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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메모

by 적정철학

우리 엄마는 똑똑한 사람이다.

그리고 성격도 급하고 빨리빨리! 정확하게! 일하는 걸 좋아한다.

가끔은 그런 엄마가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 덕분에 느리고 게으른 내가

사회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기본기?! 를 획득했다.


그런데 요즘 엄마가 스스로 총기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한다.

똑순이 우리 엄마가 요즘 가끔! 실수를 한다. (나에겐 일상이지만 엄마에겐 실수인가 보다.)

내 도시락 챙겨주는 걸 깜박하고,

내가 부주의하게 바닥에 내려놓은 안경을 밟고,

내 약 챙겨주는 걸 깜박하고,


안 되겠다! 이렇게 자꾸 뭘 까먹다니. 일기를 써야겠다!라고 엄마가 말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식탁에 놓여있는 엄마의 메모를 봤다.


도시락, 우유, 얼음, 그리고 이어폰 챙기기.

다 내 거다.

3살 아니고 30살 딸의 출근 준비물을 잊어버리지 않고 챙겨주기 위해서

엄마는 열심히 메모를 했다.


엄마가 메모를 해가면서까지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 건,

엄마가 아니라,

엄마가 보낸 하루의 기억이 아니라

철없는 딸의 준비물이었다.


내가 깜박하고 못 챙긴 도시락을, (심지어 내가 만들지도 않는다..)

왜 엄마가 신경 쓰고 미안해하고 걱정할까?

30이 되어도 내 밥 한 끼 똑바로 못 챙겨 먹는 덜렁이 딸 때문에 엄마는 메모를 시작했다.


그 메모에 언제쯤 내가 아니라 엄마 자신의 이야기가 가득해질 수 있을까.

빨리빨리! 무럭무럭! 자라나서 엄마가 챙겨주지 않아도

스스로 척척 해내는 철든 딸이 되어야겠다고 철없는 딸은 다짐해 본다.


@2021년 1월의 일상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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