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금리 인상에 따른 조정장
약 9개월간의 약세장(21.12~22.09)
폭발적인 증시 상승이 있었던 2020년을 강세장의 첫해라고 하면, 22년 강세장의 3년 차였다. 켄 피셔에 의하면 13차례 강세장의 평균 수익률은 첫 1년 차에 47%, 2년 차에 11%, 3년 차가 되면 4%로 낮아진다고 했다.
하지만 22년은 수익률 4%는커녕 심각한 약세장의 연속이었다. S&P 500 지수는 고점 대비 25%가량 하락했고 공식적으로 약세장(Bear market)에 진입했다. 그렇기에 온통 자극적인 뉴스로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시기였다. 특히나 지속적으로 증시 하락을 얘기했던 투자의 대가들이 이때다 싶어 굉장히 파멸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제레미 그랜섬은 S&P 500이 최대 45% 하락할 것이라고 말해 투자자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었다.
22년 내내 주식시장은 차가웠고 투자자들은 냉담했다. 시장 참여자들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우려하며 하나둘씩 시장을 떠났다.
① 공급 부족으로 인한 물가 상승
21년부터 백신의 등장과 함께 점차 경제 회복되고 소비가 살아났다. 하지만 그동안 전염병의 여파로 많은 공장이 문을 닫아야 했고, 줄어든 교역량으로 인해 항공, 선박 등은 멈춰있던 탓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생산기업들 역시 판매 감소를 우려해 그동안 생산량을 계속해서 줄였다. 즉, 수요에 비해 생산도 적었고, 교역량도 적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물가 상승이 일어났다. 또, 최근 중국에서 때늦은 COVID-19 봉쇄령으로 공장이 문을 닫고 수출입이 급감하고 있어 인플레이션이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② 연준(FED)의 매파적 행보
미국 22년 3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달 대비 8.5%나 상승하였습니다. 이는 40여 년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이 7.9%인 것을 감안하면 매월 최고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따라서 연준은 금리를 공격적으로 인상하여 과도한 인플레이션 억제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연준 의장이 최대 6회 정도의 금리 인상을 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현재에는 10회 이상의 금리 인상을 말하고 있으며, 심지어 금리 인상의 수치를 25bp가 아닌 50bp, 75bp까지 올릴 수 있다고 한다. 연준에서 말하는 중립금리(실질 금리가 0%가 되는 기준금리)는 현재로서는 8.5% 수준이다. 현재 미국의 기준 금리는 0.25%로 인플레이션을 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때문에 올해 금리 인상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기준금리 인상은 곧 미래 현금 가치에 대한 하락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미래의 가치가 반영된 성장주, 기술주의 경우 주가 하락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③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탈세계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4월 28일 미 하원에서 우크라이나에 첨단 무기를 지원할 수 있도록 '무기대여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때문에 전쟁이 쉽사리 종식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러시아산 원자재를 수입할 수 없는 나라는 계속해서 물가가 상승될 것이다. 소련 붕괴,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전 세계는 거대한 경제적 동맹체로 효과적인 교역을 통해서 상호 발전되어왔지만, 이러한 범세계적 경제적 동맹은 어느 한 국가의 수장의 결단으로 쉬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각국은 온쇼어링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과거 중국에 공장을 두는 우리나라의 기업체처럼 해외에 생산공장을 두게 되면, 생산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효율성이 극대화된다. 하지만 국제 정세가 불안에 짐에 따라 효율보다는 안정적인 공급망을 택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어쩌면 20년간 지속되어온 세계화의 끝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해결이 쉽게 될 것 같지 않은 이슈들로 주가지수는 연일 하락했고, 대부분의 회사의 주가 역시 하락했다. 이 하락세에 가장 많이 타격을 받은 회사들은 풍부한 유동성으로 미래 가치를 인정받던 회사들이었다.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세계적인 투자자 워런 버핏이 주주들에게 2001년 보낸 서한의 내용 중 한 문장이다. 현재에 비유하자면 물은 증시의 과열 혹은 풍부한 유동성을 뜻하며 발가벗고 수영을 하고 있는 사람은 펀더멘탈이 부실한 기업 혹은 그 기업의 투자자일 것이다. 계속되는 조정장에서 우리는 누가 벌거벗고 수영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막연한 미래 가치에 대한 환상으로 주가가 끝없이 치솟았던 기업들은 이제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추락하고 있었다.
나는 2가지 측면에서 22년 9월이 아마 저점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① 주식에 대한 관심이 급감했다.
② 높은 금리에 대한 멀티플이 이미 반영되었다.
주식에 대한 관심이 급감
2020년 2분기에 COVID-19으로 급격히 주식 시장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대세 상승장인 20년 2분기부터 21년 2분기까지 높은 수준의 검색량을 보여주고 있다. 2022년 하락 장이 꾸준히 검색량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 확실히 투자자들의 관심이 주식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주식 시장의 바닥을 보는 방법 중에 한 가지는 '대부분의 투자자가 더 이상 주식으로는 돈을 벌 수 없어'라고 생각할 때다. 특히 하락장에도 굳건히 버티고 있었던 애플(APPL)과 테슬라(TSLA)마저도 9월 마지막 주에 힘 없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매크로적 변화가 없다면 저점의 부근에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높은 금리가 반영된 멀티플
주가 = '기업의 이익(EPS)' X '투자자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프리미엄 '배수(멀티플)'
투자자가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멀티플은 해당 기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흔히 불린다. 지금 당장은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미래에 큰 수익이 날 것으로 생각되는 성장주의 경우, 높은 기대감을 받게 되고 이는 '높은 배수'로 이어진다. 반대로 성장 여력이 적은 통신, 금융 등의 산업은 상대적으로 '낮은 배수'로 평가받는다.
22년의 주식시장 약세 흐름은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와 함께 '금리 인상'이 동반되었기 때문에 위 두 가지 변수가 모두 조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의 '기준 금리 인상'은 미래 현금에 대해 더 높은 할인율을 적용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멀티플'에 대한 하향 조정을 야기한다. 왜냐하면 저금리 시대에는 예금, 채권 등이 매력적인 투자 상품이 아니지만, 금리가 서서히 높아지면 해당 자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기 때문에 주식 시장에서 자금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려하는 대로 경기가 둔화 혹은 침체가 일어나면 '기업의 이익'이 떨어진다. 이는 '수익'에 대한 하향 조정이 일어날 수 있다.
22년까지 전반적인 상승이 예상되나 현재 물가 상승으로 인한 금리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실업률마저 증가하여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었다.
나스닥 상위 100개의 기업에 대한 PER 멀티플이 2020년 4월 수준으로 하락하였다. 20년 3월 최저점의 멀티플은 17.8배 수준이다. 버블의 중심인 기술주가 많은 나스닥이라서 그런 것일까? 미국 증시의 대표 격인 S&P 500 역시 비슷한 처지이다.
S&P 500에 포함되는 기업의 향후 12개월 PER 멀티플이 최근 10년 평균인 16.6 이하로 내려왔다. 20년 3월 최저점의 멀티플은 13배 수준이다. 이번 약세장에서 기술주보다 가치주가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아 상대적으로 덜 하락하였다.
현재 연준이 어디까지 금리를 올릴 것인지 미지수이지만, 2019년 최고치인 2.5%에 해당할 때, S&P 500에 포함되는 기업의 향후 12개월 PER 멀티플이 13.5 정도입니다. 현재 16.6 수준보다 약 20%가량 더 낮은 멀티플이다. 즉, 16.6 멀티플에 대응되는 S&P 500 지수가 4,461 포인트(3월 21일 종가)로 보고 현재 반영된 금리가 100bp(1%)라고 가정하면, 3,570 포인트 정도까지는 밀릴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실제로 S&P 500 지수는 3,585 포인트에서 반등을 시작했다.
약 13개월간의 회복 구간(22.09~23.12)
거짓말처럼 증시 저점을 맞췄다. 그래서 나는 많은 돈을 벌었을까? 전혀. 나의 예측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무엇보다 현금이 부족했다. 이미 레버리지를 당겨서 쓰고 있는 상황이라 무리해서 더 빚을 썼는데 하락장이 이어진다면, 나는 이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도 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가진 주식을 팔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다행히 1년 3개월간 주식 시장이 회복했고, 보유 자산도 대부분을 회복했다.
다음 약세장 혹은 조정장을 기다리며
24년 1월 온 미디어에서 AI는 제2의 스마트폰 혁명이다.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대한 증거로 소위 'AI가 묻으면' 주가가 치솟았다. 아. 21년 하고 똑같네. 메타버스가 붙으면, 전기차가 붙으면, AI가 붙으면 기업의 실체와는 상관없이 쭉쭉 올라버렸다. 그때 하고 같다.
지난 하락장에서 가장 후회되었던 것은 레버리지를 쓰고 있는 상황에서 리스크 관리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스크 관리는 상승장에서 해야 한다.
정확히 언제가 증시의 고점인지 저점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단언컨대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지표를 통해서 '예측'을 한 뿐이다. 이마저도 예측이기 때문에 분명 한계는 있다.
따라서 예측보다는 '대응'을 통해서 현재 시장이 고점인지, 저점인지를 판단하여 수익을 실현하거나, 과감한 매수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조금 더 바람직하다.
'대응'이란 것을 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상황을 판단할 지표가 필요하다. 나는 많은 지표 중에서 'Shiller PE ratio'를 활용하여 대응하기로 했다. 'Shiller PE ratio'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인 로보트 실러(Robert Shiller)가 주식 시장의 가치 평가를 위해 고안해 낸 지표로, 주가 수익비율(PER)은 기업이 벌어들인 순이익이 일시적으로 크게 변화하여 순간적으로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점을 보정한 지표이다.
S&P 500 CAPE = S&P 500 실질 가격 / S&P 500 실질 EPS의 과거 10년 평균
(S&P 500 실질 가격 = S&P 500 지수를 인플레이션 반영한 값)
(S&P 500 실질 EPS = S&P 500 지수의 직전 4분기 EPS를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값)
앞으로의 상승장이 얼마나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CAPE 지수에 따라 아래와 같이 대응하고자 한다.
21년의 예를 들어 계산하면, 20% 수익률을 14%로 낮추는 대신 자산의 75%는 정점에 도달할 때 빠져나올 수 있다. 이번엔 파티가 가장 재밌어지는 시기에 슬금슬금 출구 근처에서 즐기다 파티장에서 성공적으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앞으로도 많을 약세장, 조정장을 대하는 마음가짐
주식시장이 빠질 때 들리는 단어는 여러 가지다. '조정장(Correction)', '약세장(Bear market)', '폭락장(Market Crash)'이다. '조정장'은 52주 신고가에서 10% 이상 증시가 하락한 경우에 쓴다고 한다. 또, '약세장'에 대한 기준은 보통 최소 2개월 동안 가격이 20% 이상 하락하는 것이다. '폭락장'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는 찾아볼 수 없었으나 뉴스에서 인용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 의미를 유추해 보면, 시장에 큰 타격을 줄만한 외부 요인으로 인해 단기간 급락을 의미하는 것 같다. 20년 3월 COVID-19으로 인해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증시가 하락한 경우가 폭락장에 해당한다.
하지만, 주식 시장이 상승할 때 쓰이는 단어는 '상승장(Bull market)'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왜일까요? 하락에 대한 표현은 10%, 20%, 혹은 그 이상으로 나눌 만큼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말이다. 많은 투자자가 '상승'보다 '하락'에 대해서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우리는 하락에 대한 원인은 찾고 싶어 하고, 하락의 정도에 따라 이름을 붙여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가 충분히 좋은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면, 주가의 하락과는 상관없이 해당 기업이 꾸준히 사업을 잘 이어나가고 있다면, 부정적인 뉴스로 마음을 어지럽히게 두는 것보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 드라마를 보거나 따듯하게 입고 산책을 나가는 편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