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아닌 위로를 샀을지도
엄마와 연남동을 걷다가 도토리 캐리커쳐 앞을 지나게 됐다. 1분 만에 귀여운 캐리커쳐를 그려주는 곳인데, 한 예능프로그램에 나와 기억하고 있었다. 악동뮤지션 찬혁이 자신의 엄마랑 방문했었지.
그 모습이 떠올라 "엄마도 해볼래?" 했더니 기다렸단 듯 "그럴까?"하는 답이 돌아왔다. 괜한 곳에 돈 쓰지 말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이제 와 돌아보면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잠시 매장에 앉아 엄마의 순서를 기다리는데, 연신 환호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꼬마 외국인 손님은 완성된 캐리커쳐를 껴안고 기뻐했고 엄마, 아빠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한 커플은 캔버스 안 서로의 모습을 가리키며 '네가 예쁘다', '아니다 네가 더 잘 생겼다'하며 꺄르륵 웃음을 터트렸다.
그 장면을 가만 지켜보면서, 사람들이 구매한 건 그림이 아닌 이 순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화지에 옮겨진 자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이 순간.
그리고 이날 우리 엄마가 구매한 건 '위로'였다.
엄마는 자기 차레가 되자 쭈뼛거리며 작업대 앞에 앉았다. 그리고 꽤나 긴장된 표정으로 캐리커쳐가 그려지는 잠깐의 시간을 기다렸다. "뭘 그렇게 긴장했어~?"하며 엄마 옆구리를 콕 찔렀더니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내 모습이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네. 걱정도 되고… 내 얼굴이 많이 상해서…."
예상하지 못한 말에 내 리액션이 고장난 사이, 엄마의 캐리커쳐가 완성됐다. 그림 작가님이 '두구두구'하는 효과음과 함께 잠시 뜸을 들이시더니 엄마의 캐리커쳐를 공개했다.
엄마의 또렷한 눈매, 멋드러지게 휘어진 눈썹, 풍성한 머릿결까지. 장점만 담아낸 그림이었다. 엄마는 캐리커쳐를 보자마자 높은 목소리로 환호했다.
"어머~ 제가 이렇게 생겼어요? 너무 예쁘게만 그려주신 것 같은데요."
따뜻한 인상의 작가님께선 엄마의 자신감을 북돋았다. "실제로는 더 예쁘세요. 빈말이 아니고 너무 미인이신데요?"하며(이런 작가님을 만나다니 운이 좋았다). 나도 너스레를 떨며 거들었다. "엄마랑 똑같구만 뭘. 엄마 이렇게 생겼어, 얼마나 예쁜데"하며.
엄마는 그제서야 활짝 웃었다. 연신 캐리커쳐를 들여다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남들이 보는 내가 이렇구나… 다행이네…."
나는 캐리커쳐를 든 채 화사하게 웃는 엄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찰칵이는 소리와 함께, 그 장면이 내 마음속에도 저장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