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은 장염과 함께 찾아왔다
고민을 하는 사이 아이들을 훌쩍 컸다. 아니.. 시간이 흘렀다. 이제 분유 대신 오물오물 씹을 거리를 줘야 한다. 나는 단유를 빨리 한 편이라 7개월 무렵부터 이유식을 시작했다. 사실 분유로 아이를 키울 때는 5개월 즈음에 이유식을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 이유식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겁이 났다. 분유도 이렇게 먹지 않는 아이들인데 밥을 먹을까? 이렇게 콩알 만한 데 목구멍으로 밥알이 넘어갈까? 그래서 최대한 미루고 또 미뤘다. 탄수화물을 먹으면 배가 불러 분유를 더욱 거부한다는 주변 엄마들의 경험담도 나를 말렸다.
그러다 올 것이 왔다.
한동안 아프지 않고 별 일 없이 자라던 아이들이 갑자기 연달아 토를 했다. 장염에 걸린 것. 아이들은 생후 80일 무렵 입원을 했는데 나는 입원 했을 때 보다 이 때 더 가슴이 아팠다. 솔직히 열흘 가까이 입원했을 때는 내 몸이 더 힘들었고 병원에서 해 주는 각종 치료를 병행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얼마나 아픈건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아이들이 주사 바늘을 꽂고 있는 것 외에는 멀쩡해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장염은 내가 안다. 얼마나 아픈지. 염증이 배를 얼마나 찔러대는지, 잘 수도 없고, 일어날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다는 걸. 그래서 아이들이 장염이라는 말을 듣고 처음으로 '내가 대신 아프고 싶다'라는 말을 공감했다. 내가 대신 아프면 나는 약을 먹고 견딜 수라도 있는데, 이 아이들은 대체 이게 뭔지도 모른 채 계속 아파야 하니까.
의사는 유제품인 분유를 가능하면 끊고 미음을 주라고 했는데 이유식을 막 시작하려고 했던 시기라 어느 정도의 미음을 줘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인터넷 카페에서 찾아보니 젖병으로 먹일 수 있을 정도로 물로 된 쌀미음을 만들어 줘보라는 조언이 많았다. 그래서 쌀가루를 만들어 그냥 약처럼 물에 타서 먹였다. 당연히 양이 너무 적었고 이틀 정도 되자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분유를 먹이면 바로 구토와 설사가 이어져 함부로 먹일 수도 없었다.
'조금만 참아줘' 라고 말하며 나흘 정도를 보리차와 쌀미음, 약만 먹였다. 그리고 닷새 째, 분유를 가져다주자 두 아이가 모두 갑자기 두 손으로 젖병을 쥐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여행객마냥 꿀꺽꿀꺽 들이키기 시작했다. 출산 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이들은 행여나 젖병을 빼앗길까 꼭 쥐고 정말 빠르게 '원 샷'으로 분유를 다 마셔버렸다. 정말 배가 고프면 먹는구나. 굶기면 된다는 어른들의 말이 살짝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아이들은 원래 먹던 양의 두 배에 가까운 분유를 매 끼니마다 먹어치웠고 걱정이 앞섰던 이유식도 어렵지 않게 적응했다. 오래 못 먹은 양을 한꺼번에 먹으려는 듯 입에 넣는 건 모조리 흡수하는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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