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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Mar 30. 2020

2. 베이비시터의 잠적

쌍둥이 엄마의 출근 준비(2)

코로나 19 확진자가 우리나라에서 크게 확산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 날 우리는 그냥 아이들의 점심을 먹이고 있었다. 나는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엑스가 혹시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우려됐고, 버스로 30분이 넘는 거리를 오가는 출퇴근이 혹시 안전한지 물었다. 솔직히 그때는 코로나 19가 이렇게까지 오래 갈지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우리 가족에게 전염을 시킬 것이란 걱정보다는 그저 그녀의 건강 그 자체만 생각했다. 이건 정말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데 엑스가 말했다. 


"그래서 안 그래도 말을 하려고 했는데요, 제가 버스 타고 오가는 게 이 집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을듯하고,  또 엄마가 회사에 출근을 하게 되면 아침에 출근 준비할 때도 사람이 필요할 거 같은데 빨리 다른 사람을 구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이게 지금 무슨 말이지. 이별의 말은 마치 아주 어린 시절, 이성에게 처음 '그만 만나자'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날처럼 기약 없이 찾아왔다. 5초 정도,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수십 만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등원 도우미를 한 명 구하라는 건가' 

'코로나 19에 걸렸다는 건가' 

'우리 집 식구들이 코로나 19에 걸릴까 봐 휴가를 달라는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도 그가 '그만둔다'라는 가장 정확한 팩트는 피해갔다. 출근을 앞두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엔 그간 보여준 엑스의 행보가 꽤 신뢰를 줬기에 이렇게 무책임하게 '다음 주 월요일에 퇴사하겠다'라는 말을 하루 이틀 전에 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코로나가 좀 걱정이 되나요'라고 물었는데, 엑스는 여러 가지 장황한 말을 늘어놨다. 본인이 감염되면 남편의 직장에도 영향이 생긴다고 했다가, 또 본인의 역량이 이 집에서 일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했고 나는 점심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에 한 달 가까이 아이들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하고 있어 심신이 매우 피폐한 상태였다. 남편이 출근한 후 엑스가 출근할 때까지 오전 시간이 버거워 급여를 올리고 오전에도 와 달라고 할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시터 부재' 선택지는 갑작스럽고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아이들 낮잠을 재운 후 옆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만두겠다는 말이구나... 그러면 나는 월요일부터 어쩌지. 어리석은 엄마지만, 당장 버스로 출퇴근하는 시터 때문에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될 것이란 생각보다는 당장 혼자 어떻게 아이들과 집에 있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당시 14개월의 아이들은 틈만 나면 의자와 식탁에 올라가 부모의 심장을 내려앉게 만들었다.  활동성이 전에 비해 만 배 이상 커졌고, 나는 이 아이들을 혼자 안전하게 돌볼 자신이 없었다. 


밖으로 나가 식탁에 앉았다.  일을 하고 있는 엑스에게 말했다. 


'일단 한 달만 해 주세요. 제가 다른 사람을 구하기도 해야 하는데 지금 코로나 19 때문에 시터 면접을 볼 수가 없어요' 


그러자 엑스가 말했다. 

'사실은요, 저희 남편이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걸 싫어해요' 


엑스는 남편이 이 일을 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이제 이 일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설명이 너무 길었고 별로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베이비시터의 가정사가 그렇다면 내가 붙잡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내게 필요한 건 다음 시터를 구할 때까지 일을 해주겠다는 대답뿐이다. 시터는 '집에 가서 남편과 다시 상의해보겠다'라고 말했다. 


긴 주말이 흘러갔다. 일요일 저녁이 됐다. 엑스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오라고 하는 건 오히려 화를 키우지 않을까 싶어 나 역시 남편과 이 일에 대해 상의했고 우리는 당분간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했다. 먼저 전화를 해서 결론을 말해주지 않는 상황이 야속하고 화가 났다. 내가 고용주인데 왜 동등하지 못한 위치에 있는 걸까 하는 불쾌함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 탓이다. 전화를 걸었다. 


"저.. 저희 아파트에서 확진자가 나와서요. 위험하실 거 같아서 내일부터 당분간 안 나오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러자 뜻밖에 엑스가 이렇게 말했다. 

"아, 제가 남편이랑 상의를 해 봤는데요! 사실 상의할 것도 없죠. 제 인생인데요. 아무튼 앞으로는 제가 룰루랄라가 클 때까지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뭐지..? 갑자기 다시 나오기로 결심했다는 말에 나는 그냥 알았다고 답했고, 대신 코로나 19 확진자가 나왔으니 일주일 정도 휴가를 갖고 그다음 주부터 나오라고 말했다. 엑스는 일주일을 쉰 후 다음 주 월요일에 처음 출근했다. 그리고 그날 뿐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엑스는 결국 엑스가 됐다.  

월요일에 출근해 하루 일한 엑스는 화요일에 돌연 출근하지 않았다. 한 번도 지각, 결근을 한 일이 없기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설마 전화를 받지 않고 잠수를 탔을 리가 있나? 베이비시터 일을 하는 사람이?나와 가족들은 '무슨 일이 있나?' 하는 생각부터 했다. 누군가가 혹시 확진 판정을 받은 건 아니냐고 했는데, 그랬다면 접촉자인 내게도 연락이 왔을 것이다. 첫날은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계속 받지 않았고, '무슨 일 있으세요'라는 문자에도 답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그만둘 리가 없다는 믿음'은 맘 카페에서 이런 식으로 그만둔 수많은 시터 사례를 읽은 후에 깨졌다. 이런 식으로 그만두는 베이비시터가 있구나. 그래서 사람을 1대 1로 혼자 고용하면 안 되나 보다, 인증하는 기관이 필요하구나... 나는 큰 상처를 받았고, 화가 났다. 사람을 믿은 것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아이들이 잘 따르던 사람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또 다른 사람에게 아이를 맡겨야 하는 상황이 마음 아팠다. 처음으로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아이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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