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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졔잘졔잘 Apr 28. 2020

14. 베이비시터와 삶의 질   

쌍둥이엄마의 출근준비 (8) 

입주 베이비시터가 오기 전 날 잠이 오지 않았다. 이거 정말 괜찮은걸까. 모르는 남과 한 집 살이라니. 게다가 내 서재를 그 분의 방으로 내드려야 한다니, 만약 생각보다 별로면 불편해서 어쩌지, 입주 생활을 그만 하고 싶을 때는 쉽게 그만둘 수 있을까....? 만감이 교차했다. 


그리고 약속한 날, 그 분이 오셨다. 

업체와 일주일의 일종의 인턴(?)기간을 두기로 했는데 베이비시터(이하 시터 분)는 출근 첫 날 반찬을 해 오셨다. 우리 집에서 지내는 동안 본인이 먹을 반찬과 우리 부부가 함께 먹을 반찬을 직접 만들어 온 것. 솔직히 입주 베이비시터라도 음식을 못하는 경우는 많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 밥도 내가 주말에 만들거나 여의치 않으면 사서 먹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우리 반찬이라니. 처음에는 의아했는데, 반찬을 한 입 먹어보고 남편에게 연락을 했다. 


'오빠, 이 분이야' 


시터분은 재야의 음식 고수였다. 일주일간 비록 인턴기간이지만 아이들에게 세 끼를 모두 다르게 해 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하지만 나를 다독였다. 이미 여러 차례 시터들에게 상처받은 경험이 있지 않은가. 넘어가면 안돼, 언제 변할 지 몰라, 언제 떠날지 몰라, 정 주지 말자라고 스스로를 세뇌했다. 


어쨌든 긴~ 기록과 달리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베이비시터에게 정착할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해당 시터에 대한 이야기는 꽤 만족스럽다는 것 이외에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현재 같이 생활하고 있는 분이기에 판단을 함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터마저 떠나면 그 때 또 찾아오겠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베이비시터가 안정적으로 정착하면서 우리 부부의 생활은 꽤 달라졌다. 


우선 수면의 질이 향상됐다. 


그간은 저녁 8시가 되면 아기 방에 두 아이를 모두 몰아넣고 책을 몇 권 읽어준 후 불을 끄고 강제 취침에 들어갔다. 남편이 늘 일찍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나 역시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 있었기에 한 명이 둘을 한꺼번에 재우는 방식으로 처음부터 훈련했다. 


하지만 1번 아이가 잠들면 2번 아이가 달려가 걔를 깨우고, 2번 아이가 잠들만 하면 1번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이런 우여곡절을 반복하다보면 짧아도 한 시간, 가끔 두 시간이 걸리는 날도 많았다.  사실 재운다기보단 그냥 둘다 어둠 속에서 놀다 스스로 지쳐서 잠 든다고 하는 쪽이 맞다. 둘 다 안아서 재울 수도 없고 한 명을 안아 재우다 보면 다른 애가 그걸 꿈뻑꿈뻑 바라보다 혼자 외롭게 잠드는 날도 많았다. 


이에 시터분은 아이들을 각각 한 명씩 재우자고 제안했다. 서재가 있는 방에 시터분을 위해 매트와 이불을 마련해 두었는데 한 아이를 그 방에서 재우고 다른 한 아이는 아이방에서 나 혹은 남편이 재우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꺼려졌다. 서재에서 아이를 재운다니, 그래도 될까. 그러자 남편이 나를 설득했다. '서재도 우리 집에 있는 방이야' 라며.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보기도 아까운 귀한 내 딸을 재우려고 알록달록 예쁜 방을 꾸며 두었는데 서재에서 재울 수는 없다, 안방에 새로운 침대를 사겠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터 분이 우리를 말렸다. 지금은 임시적으로 이렇게 재우고 엄마가 출근을 시작하면 아이 방에서 본인이 두 명을 모두 재우겠다고 말했다.(이건 불가능할 것 같다) 아이 한 명은 계속 시터랑 자야 하는 부분이 마음이 아팠는데, 시터분께서는 돌아가면서 재우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한결마음이 편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 말을 수용하기로 하고 밤이 되면 각각 한 명씩 아이를 데리고 들어갔다. 


신세계가 열렸다. 20분이면 아이 둘을 모두 꿈나라로 보낼 수 있었고, 새벽에 깨는 날도 거의 없었다. 보통은 한 명의 아이가 새벽에 살짝만 깨도 다른 아이가 그 소리에 덩달아 깨서 이 아이, 저 아이를 재우다가 두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아이 한 명만 재우니 살짝 깨면 다시 살짝 재우면 됐다. 깨지 않고 통잠을 자는 날도 많다. 그러니 모든 가족의 '수면의 질'이 월등히 높아졌다. 


룰루 랄라가 생각보다 낯가림이 적고 적응을 잘 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시터분과 아침마다 '어제 00 잘 잤어요?'라고 묻고 답하는 게 인사가 된 것도 재밌었다. 



아침을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은 아이들 아침을 먹일 때 남편과 내가 한 명씩 붙들고 먹였다. 이마저도 남편이 일찍 출근하는 날은 나 혼자 숟가락 하나를 들고 비위생적으로 이 아이, 저 아이에게 참새 모이 주듯 밥을 먹였다. 하지만 시터분이 오신 후로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아이들이 밥을 먹을 때 아침을 먹거나 좀 쉬었다. 저녁에도 남편이 일도 다 못하고 부랴부랴 퇴근하는 날이 현저히 줄었다. 저녁을 함께 먹일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월급의 대부분을 누군가의 월급으로 주게 됐는데 삶의 질은 월등히 높아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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