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혜 기자의 육아의학공부 - 약, '식후 즉시' 먹여요
"밥 먹고 약을 그렇게 바로 먹여도 돼?"
"해열제를 밥 먹이기 전에 먹여도 돼?"
우왕좌왕 입니다. 두 아이가 동시에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입을 벌리고 거친 숨을 내쉬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으니 말이죠. 하루간 해열제를 먹였는데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약 종류는 무려 4가지로 늘어났고(지난 회 '센 약 주세요' 이후 항생제를 받아왔습니다) 두 아이의 약 종류가 달라지니 어른들은 점점 헷갈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아침의 화두는 "약을 언제 먹여야 맞는거야?"였습니다.
39도 이상의 고열 증상이 있어 아침에 급하게 해열제를 먹였고, 이후에 밥을 먹이려니 '약->밥'의 순서가 괜찮은건지 괜히 걸렸습니다. 게다가 밥을 먹고 나면 또 기침약, 가래약, 항생제 등을 먹여야 하는데 그러면 '약->밥->약 인데 이건 또 괜찮은건지... 애써 먹은 밥을 토하는 건 아닌지 신경이 쓰였죠.
그때 남편이 말했습니다.
"아니, 지난 번에 무슨 기사 썼잖아. 식후 30분 아니고, 식후 즉시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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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제가 썼네요 그런 기사
정신 없는 엄마입니다 ㅎㅎ 요즘 아이들 약 먹이는 부모님들 보시면 알겠지만 약 봉투에 '식후 30분'이라는 표기가 사라진 지 꽤 오래 됐습니다. 대신 많은 약국에서 '식후 즉시'라고 표기하고 있죠. 밥을 먹인 후 30분 정도 소화가 되길 기다렸다 약을 먹이곤 했는데 요즘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복약지도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당시 약사 선생님께서는 "위장약이 아니면 끼니를 거르고 먹여도 되고, 약을 식후 즉시 먹는 쪽으로 추세가 바뀌고 있다"고 설명해주셨습니다.
복용법에도 추세가 있다니, 의아하겠지만 사실입니다.
지난 2017년 9월 서울대 병원은 기존 '식사 후 30분’이던 복약 기준을 ‘식사 직후’로 변경한다고 밝혔고, 최근 3년 여 간 많은 병원들이 이같은 복용법을 따르고 있죠. 이에 대해 김연수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외국에서도 식후 30분 복약 기준을 적용하지 않고 있고, 식사 직후로 변경해도 환자에게 무리가 될 사안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식후 30분이 지나고 나면 약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종종 잊게 돼서 차라리 시간을 지키지 않고 식후 즉시 먹는 쪽이 더 낫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도 2017년에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약 복용법인 ‘하루 세번, 식후 30분’은 약물에 의한 위장장애 부작용을 감소하는 동시에 약이 흡수돼 우리 몸 속에서 일정하게 약물 농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식사 시간에 맞춰 규칙적으로 의약품을 복용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라며 새로운 복용법을 안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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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일부 약은 복용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마음대로 정하면 안되고,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잘 듣고 지켜야 합니다. 그 분들은 전문가니까요. 보통 약의 복용 시간은 식후, 식전, 취침전 으로 나뉘는데요. 아래와 같은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고 있으면 실수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식후:
= 공복에 복용하면 위장장애를 일으킬 수 있는 약으로 음식물이 있으면 약 효과가 높아지거나 섭취한 음식이 위 점막을 보호해 속쓰림 등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음
= 이부프로펜(해열제), 디클로페낙(소염진통제), 철분제, 오르리스타트(비만 치료제)
=오르리스타트(비만치료제)는 섭취한 음식에서 지방성분이 흡수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약이기 때문에 음식물이 흡수되는 식후 1시간 이내 복용 권장
2) 식전:
=음식물 때문에 약 흡수가 방해되거나 식전에 먹어야 약효가 잘 나타나는 약
=비스포스포네이트(골다공증치료제)는 충분한 물과 함게 식사 1시간 이전에 복용해야 하며, 복용 후 바로 눕지 않아야 함
=수크랄페이트(위장약)는 위장관 내에 젤을 형성해 위 점막을 보호하기 때문에 식사 1~2시간 전
=설포닐우레아(당뇨병 치료제)는 식사 전 복용하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는 효과
3) 취침 시:
=주로 졸음을 유발하는 약
=비사코딜(변비약)은 복용 후 7~8시간 후 작용이 나타남, 취침 전 복용해야 아침 배변 효과
=항히스타민제(알레르기성 비염 치료제)는 복용 후 졸음 발생하기 때문에 취침 전, 낮잠 시간 등 조절하며 복용하면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