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혜 기자의 육아의학공부 - 항생제 내성은 언제 생기나요?
한 달째입니다. 이렇게 길게 감기가 간 적이 없었는데... 쌍둥이 룰루랄라가 한 달째 자잘한 감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뭐 기침도 안하고, 열도 없는데 콧물이 나고, 보채고, 그러다가 가끔 열이 나지만 다음 날 또 괜찮아지고, 기침을 두어번 하다가 또 괜찮아지고... 그러다 오늘 드디어 누런 콧물이 나왔죠. 그리고 실로 오랜 만에 병원에 가서 선생님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약을 좀 세게 해 주셔야 할거 같아요"
어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들, 소아과에서 '센 약' 찾는 분들 많을거에요. 저는 이런 말을 하는 제가 좀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아이가 너무 오래 아프다 보면 순간 "대체 이 병원 약을 쓰는거야, 마는거야" 하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하거든요.... (의사선생님들께서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만, 아기가 너무 길게 아프면 엄마가 몸이 힘겨워서 그렇게 되는 것이니 이해해 주세요ㅜㅠ)
아무튼 오늘 아침 저와 남편은 아이 둘을 차에 태우고 , '친절한 의사선생님+약한 것으로 추정되는 약'이 있는 병원을 포기하고 '딱딱한 의사 선생님+좀 더 잘 받는 것으로 추정되는 약'이 있는 병원을 택했습니다. 이제 그만 이 자잘한 감기를 멈추자! 결심하고요. 그리고 "선생님... 항생제 처방은 안 해주시나요? 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선생님 역시 항생제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당연하죠. 선생님이 부모가 사정한다고 약을 막 지어 주시면 그게 오히려 좀 이상한 거죠. 저 역시 30개월간 아이를 키우면서 이 약, 저 약에 대해 많이 고민했는데요. 그 중 가장 공부하면서 놀라웠던 게 항생제였습니다.
사실 항생제는 ‘인류의 구원자’라 불립니다. 질병에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고 버티면 최후에는 죽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감기'에도 항생제를 너무 과잉 처방하는 게 질병당국의 큰 우려 중 하나라고 합니다.
실제 감기 중 80~90%는 바이러스 감염증입니다.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의미죠. 감기 뿐 아니라 독감, 단순 대상포진도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입니다. 이런 바이러스성 질환은 '항생제'가 아무런 효과가 없고, 타미플루 등의 '항바이러스제'가 치료약입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기침, 콧물, 가래가 있다면 각 증상에 맞는 '대증치료'를 해야 하는 것이지 곧장 항생제로 가는 게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감기에 고열이 동반될 때는 항생제를 고민할 수도 있습니다. 중이염, 요로감염, 세기관지염 등이 나타날 경우인데요, 이럴 때는 항생제가 필요하지만 '항상'은 아니라고 합니다. 감기를 앓고 난 뒤 발병하는 ‘급성 중이염’은 80%의 어린이가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스레 낫고, 백일해, 마이코플라즈마, 클라미디아는 항생제가 필요한 감염증입니다. 또한 5살~12살 사이의 어린이에게 주로 겨울과 가을에 발생하는 질환인 ‘인두염’의 경우 38.5도 이상의 열이 3일 이상 계속되고 세균성일 경우 항생제가 필요합니다.
이런 증상은 모두 감기와 비슷하게 호흡기 질환으로 시작하거나 38도 이상의 고열을 동반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진찰을 받아야 하고요. 하지만 기자처럼 단순히 ‘누런 콧물이 나면 항생제를 써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위험합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감기에도 항생제를 처방하는 일이 많다고 해요.
질병관리청 자료에 따르면국내 인체 항생제 사용량(국민 1,000명 중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는 사람 수)은 2018년 기준 29.8로 OECD 25개국 평균(18.6)보다 1.6배나 높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항생제가 필요 없는 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처방하는 비율이 매 해 40%에 육박한다고 하네요?
이같은 항생제 남용의 가장 큰 문제는 '항생제 내성' 입니다. 항생제 내성은 내 아이의 ‘몸’에 생기는 게 아니죠. 내성은 아이의 몸에 침입한 ‘세균’에 생깁니다.(이게 머선 소리..)
몸 속에 허락도 없이 침입한 세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항생제를 먹었는데 세균과의 싸움에서 항생제가 져 버리면, 항생제가 무력해지는 것이죠. 이 때 세균은 항생제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방어능력, ‘내성’을 갖습니다. 보다 강력한 세균이 되는 셈입니다.
이렇게 항생제 내성이 생기면, 우리 아이가 위험해지는 게 아닙니다. 강력한 세균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서 다른 친구들에게 '더 강력해진 세균'을 전파하게 되죠. 지역 사회에 슈퍼 박테리아가 퍼지는 셈입니다. 실제로 항생제 내성으로 인한 부작용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2050년에는 3초당 1명이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할 것이란 연구도 있습니다.
항생제 내성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바로 '올바른 처방과 복용'인데요
의사 선생님이 항생제를 과하게 처방해서도 안 되지만 반대로 항생제를 요구해서도 안 됩니다. ‘센 약 주세요’ ‘빨리 낫는 약 주세요’ 등이 모두 이런 요구입니다. 또 한 번 받은 항생제는 끝까지 복용해야 합니다. 복용 중간에 아이의 증상이 호전되면 많은 부모님이 ‘이렇게 강한 약을 계속 먹일 순 없어’라며 약을 끊습니다. 이러면 증상이 호전돼도 세균이 죽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정해진 양을 정해진 시간에 복용해 세균을 물리쳐야만 내성을 막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항생제를 과량 복용하면 구토, 피부 발진, 설사 등의 부작용이 생기기도 하는데요 이상 반응이 생겼을 때는 다른 계열의 항생제를 복용하게 됩니다. 이 때 이상이 생긴 약 이름을 기억해 두고 다음 처방 때 의사 선생님께 알려주는 게 좋습니다. 항생제 복용 후 아이가 설사를 해 유산균을 먹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때 유산균은 항생제 복용 4시간 이후에 먹이길 권합니다. 항생제는 세균을 억제하는 약물이기 때문에 유산균이 모두 사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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