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먼저 첫 번째 깨달음이 있던 때의 회상이다.
나는 2007년에 교리 교육을 마치고 한강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2007년 가을 어느날 신부님께서 머리에 가득히 물을 부어주셨다.
그 순간이었다. 나는 20대 내내 “발 밑에 질척 질척하게 더러운 물이 흐르고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터널을 한 없이 걷는 이미지”에 시달려 왔다. 잠자리에 들면 늘 이 이미지가 나를 괴롭혔다. “언제 터널의 끝이 끝나고 밝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으려나?” 하는 것이 나의 오래된 소망이었다. 2007년 세례 후 기도를 드리던 중에 다시 그 이미지가 엄습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터널의 한 쪽 부분이 “텅”하면서 열리더니 밝은 빛이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어서 다른 한 쪽 부분이 열렸고 이어서 다른 한 부분이 열리고 열리면서 온통 밝은 빛으로 가득 찼다. 빛에 익숙해지자 주변 풍경이 차츰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과 주변 풍경을 가려 갑갑하기만 했던 터널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고 더러운 개천이라 여겼던 곳은 맑은 물이 흐르는 시내였다. 냇물 밖에는 푸른 잔디 위에 드문 드문 나무가 있었다. 나비와 새가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파란 하늘 위에 구름은 또 얼마나 평화롭던지.
그러나 그 후 몇 년간 세파에 시달리며 그날의 감격은 식어버리고 차츰 내 신앙도 냉담해졌다. 나는 주모경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불량 신앙인이 되어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2. 그러다 몇 년이 흘러 2015년에 두 번째 은총이 있었다.
2015년 9월 24일부터 8박 10일 일정으로 런던과 파리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29일 노틀담 성당을 방문하여 우리 가족 모두가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성당에서 마침 그날 저녁에 바흐,헨델 음악회가 열렸다. 우리 가족은 “노틀담 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이 장중하게 연주되는 가운데 찬송가를 듣는 행운을 얻었다. 첫 곡이 팜플렛에 “antienne grégorienne/ Salve Regina de Cluny”로 소개된 찬송가였다(인터넷을 찾아봤는데 아직 정확하게 어떤 곡인지 모르겠다). 라틴어나 프랑스어를 알지 못해 영어로 번역된 가사를 읽으며 겨우 그 뜻을 어림짐작하며 노래를 따라갔다. 장중한 파이프오르간 연주 속에 남성 솔로의 독창이 노틀담 성당을 가득 채운 가운데 가사 중 “Hail holy Queen, mother of mercy, …. To thee do we cry, poor banished children of eve”와 “thine eyes of mercy toward us and after this our exile show unto us the blessed fruit of thy womb Jesus;”라는 구절, 특히 “poor banished children of eve”, “the blessed fruit of thy womb Jesus”라는 문구의 단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터지면서 음악회 내내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이상스럽게 서러운 눈물을 흘리면서도 많은 위안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따뜻한 품속에 아무런 죄악 없이 순수한 존재로서 폭 쌓여있는 느낌을 받았다. 잘은 모르지만 “누군가 내 곁에 지금 계시는구나!”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지금 생각해보아도 그때 왜 눈물이 터졌는지, 그 순간 왜 깊은 위안을 받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소위 고딕 양식의 대표적 건물이라고 하는 노틀담 성당의 내부가 독특한 공간을 제공했던 것과 성탄 이브의 순결한 순간에 버려진 아이들이라는 문구가 주는 서러움이 이유가 아닐까 짐작할 따름이다. 그리고 "태중의 예수님"으로 번역될 “thy womb Jesus”라는 문구와 문득 머리를 들자 눈 앞에 들어온 성당 내부의 모습이 바로 성모 마리아님의 태중(womb)과 비슷하구나라는 생각이 겹치면서 어머니 태중에서 느꼈을 따뜻함과 위안을 얻었던 것 같다. 그 순간 머리 위 성당의 천정,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 많은 사람들의 기원이 담긴 촛불들, 성인들의 조각상, 정면의 십자가 그리고 경건한 선율이 제 텅 빈 마음을 채웠고 한 없는 위로가 나를 감싸는 경험을 했다.
3. 건물의 벽이 사라지면서 오랫동안 시달려왔던 답답함과 무망함이 풀리며 느꼈던 한 없는 자유, 반면에 건물의 벽과 천정이 주던 안온함의 의미에 대해, 그 모순된 느낌에 대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