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특히 10대와 20대에
벽과 천정이 주는 압박감에 오랫동안 시달려 왔었다.
그러다 중년의 나이가 되고 나서야 벽이 사라지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다.
평화가 햇볕과 함께 그대로 내가 걷던 터널의 어둠속으로 들어왔다. 나는 처음으로 파란 하늘과 녹색 풀밭을 보았다. 무엇보다 내가 걷던 터널 속에서 빛이 들어온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첫 은총을 받던 날 터널의 벽이 걷히며 비로소 볼 수 있었던 그 주변 풍경의 생생한 아름다움과 평화로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두번째 은총은 건물 밖이 아니라 건물 내부에서 얻어졌다. 건물 안에서의 안온함이었다. 이것이 내 외로움을 달래고 위로했다. 파리 노틀담 성당에서 찬송가 속에 성당 건물의 안에서 한 없는 위로를 받았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건물의 천정과 벽, 더구나 전혀 빛 한 줄기 허용하지 않던 밀폐된 공간이 얼마나 갑갑했던가? 언제쯤 이곳을 벗어날 수 있으랴? 터널 끝, 여행이 끝나는 곳, 건물의 밖을 희망하며 질퍽대는 검은 물길을 거슬러 걸음을 겨우 잇고는 했다.
이런 이미지가 파리 노틀담 성당에서 처음으로 깨졌다. 성당 건물 안쪽에서 갑갑함이 아니라 성모님 품안에 안긴듯한 한없는 위로를 얻었다.
벽은 억압이기도 했지만 보호이기도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깨달음이 있고나서야 비로소 나의 아버지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리고 내가 밥벌어 먹고 사는 법이 받아들여졌다. 두 딸의 아버지로 살고 있는 내가 용납되기 시작했다.
건물의 내부가 받아들여지던 순간이었다.
이제는 무력하게 답답해하며 마냥 걸을 게 아니라 벽과 천정을 받아들이되 그곳에 창을 낼 생각이다. 개보수가 가능하고 여차하면 건물을 부셔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그럴 가능성이 허용된다는 것만으로도 좋다.
내 아버지가 그랬듯, 나도 당분간 내딸들에게 튼튼한 벽과 천정이 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그동안은 결코 누구에게고 억압이 되지 않으려 요구하는 말이나 내 희망을 꺼내지 못했었다.
밖의 빛과 바람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을 낼 생각이다. 나의 건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