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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Feb 06. 2024

'따돌림'은 자연스러운 현상일까

인간관계(4)-단체여행 편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혼자 여행을 주로 했던 나는, 최근 들어서는 가족 여행이나 패키지를 선호하게 됐다. 홀로 여행은 몰타가 마지막이었는데, 한겨울 몰타는 오래된 도시와 바다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풍경에도 너무 쓸쓸했다. 그곳에서도 결국 매트 펴고 요가하며 시간을 견뎠던 기억.


코로나가 지나고 다시 시작한 여행에서는 단체 여행을 선택했다. 이번엔 '나 혼자' 패키지 관광 합류. 홀로 여행할 때는 여행 책자, 그 나라와 관련된 책 한 권, 그리고 와인 한 잔씩 곁들이는 걸로 충분했었다. 하루 종일 미술관에 있기도 하고, 일정도 최소화하며 자유시간을 누렸다. '시간'을 음미하는 여행이랄까... 이런 장점을 내려놓더라도 단체 여행이 주는 매력들도 분명 있다.


단체 여행은 짧은 일정에 여러 지역을 소화한다. 경제적이고 안전하고, 따로 준비할 거 없이 몸만 가면 된다. 가이드의 풍부한 설명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 더해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경험은 그 자체로 사람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요즘 패키지는 자유 시간도 충분히 주는 경향. 물론 룸메이트를 잘못 만나면 좀 불편하다. 그렇지만 룸메이트는 내 동행이 아니기 때문에 잠만 같이 자고 낮에는 또 거리를 두면 된다.  


'나 홀로' 참여한 단체 여행의 한 축은 사람관계에 대해 고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단체 여행은 사회의 축소판 같아서 그 안에서 일종의 자연스러운 따돌림, '왕따'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그 과정을 보면 이렇다. (몇 번의 단체 여행을 종합해 보자면.)


1. 튀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나이든 성별이든 무리와 다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인간성과 성격 관련. 뜬금없이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거나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거나 민폐를 끼친다거나 뭔가 다른 무리들과 잘 섞이지 않는 지점이 보임.

2. 여러 사람이 특정인에 대한 공통 의견을 보인다

남 얘기는 낯선 사람들을 친하게 묶어주는 대화 소재가 된다. "사람을 불편하게 하네""너무 나서지 않나""시간을 잘 안 지키네" 등 특정인에 대한 평가가 모이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맞네" "너도 느꼈어?" 식으로 자연스러운 연대감을 갖게 된다.

3. 특정인을 피하는 상황이 생긴다

'나 혼자만 느끼는 건가' 넣어뒀다가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받게 되면 특정인에 대한 평가는 '확정', '확신'이 된다. '즐겁게 여행하러 온 건데 남 신경 쓰고 싶지 않아' 란 생각에 거리를 두게 된다.


여행을 가게 되면 아무래도 평소보다는 너그러워진다지만 '지금'이라는 시간은 개개인에게 참 소중할 수밖에 없다. '남'에 대한 감정 때문에 피해받고 싶지 않기에 거리를 두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때문에 고작 일주일, 열흘 만에도(시간이 길어질수록 현상은 고착화된다) 느슨한 단체 여행객 사이에도 '왕따'가 발생한다. '다수'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당하는 사람 입장에선 여행의 즐거움을 해치는 요인. 다른 사람과 맞추는 노력이 일정 부분 필요하기도 하다. 혹은 '나는 이 다수와 굳이 어울릴 필요 없어'라 생각하고 귀를 닫으면 사실 '따돌림'이란 건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벌어지지 않현상일 것이다. 사람들이 곁에 오지 않으면 개인 시간을 더 많이 쓸 수도 있으니.


혼자 있는 걸 좋아하면서도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즐거움을 놓칠 수 없는 나는, 단체 여행에서도 결국 반반의 선택을 했다. 함께 하면서도 개인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다른 사람의 장점 위주로 보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남에 대한 얘기는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


## 사람에게서 얻는 힘도 있다

최근 여행에서도 튀는 분들이 좀 있긴 했는데 다수가 크게 문제를 삼지는 않았다. 내 경우, 무엇보다 동행한 사람들과의 대화가 정말 좋았다. 여행지나 프로그램에서 배우는 것 만큼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해서 얻게 된 것이 정말 많았다. 요가하는 사람들과의 여행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었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책 한 권'이라는 생각을 했다. 같이 요가와 명상을 하며 시간을 보냈고, 고민하는 지점이 비슷하니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예쁘다", "에너지가 좋다"란 말로 서로를 북돋았다.(진심이었다) 결국 여행은 비슷한 결의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이번 여행도 무탈하게, 충분히 비우고 충분히 채우고 돌아와서 감사하고 있다. 너무 좋아서 그야말로 '말로(글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풀어내보려고 한다.


일단은 출근 후, 단단하게 앉아있는 나를 발견한다. 여행의 힘으로 당분간은 일상을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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