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이 되어버린 민희진, 리스크 관리 실패한 하이브
세상담론(1)
세상 돌아가는 얘기는, 뉴스에 대해선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요 며칠 떠들썩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에도 계속 뜨고 있어서. 또 이 갈등에서 읽히는 직장인 공감대도 큰 지라. 정리를 좀 해보려 한다. (분명한 것은 실상은 알 수 없고, 그저 보이는 상황에 대한 감상평일 뿐입니다.)
##거물이 되어버린 민희진
사실 기자회견을 생방송으로 보지는 못했다. 이후 유튜브 알고리즘이 계속 보게 하니 편집본들을 보다가.. 계속 보게 됐다. '국힙원탑' 각종 밈에, '일 잘하는 여사원 견제하는 직장 상사'라거나, 거대 기업과 싸우는 계열사 사장의 거침없는 발언.. 뭐 그런 식으로 온라인에선 회자되는 것 같다.
처음 감사 기사가 뜨고 그녀의 사석 발언들이 돌 때는, 안 그래도 센 언니 같았는데 뉴진스가 잘 되니까 좀 과했구나 했다. 그런데 그걸 한 번에, 단박에 여론을 돌려놓은 것은 '나훈아 선생님 이후 역대급 기자회견'으로 불린 그녀 자체의 등장이었다. 여론 자체를 뒤집어(뒤흔들어) 놓는 걸 보고 이 언니, 정말 보통이 아니구나 했다.
업계 상황이나, 실상은 잘 모른다. 이 언니 직업 자체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보니. 위기 대응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기 스타일로 살려놓는구나 했다. 모두가 기자회견에 빠져들게 만들었고, 회자되게 만들었다. 보통의 방식으로 정장을 입고 청순한 차림으로 앉아서 점잖은 말이나 설명이나 울고 짜는 게 아니라.. 정말 독특했다. 계속 보게 만들었다. 왜 저렇게 후줄근하게 입고 나왔을까, 했는데 모자와 상의는 품절이 되고. 그게 공개된 뉴진스 멤버의 신곡 사진 콘셉트랑 비슷하고(아마도 그 언니가 자주 입는 옷인 거 같은데, 정말 이것까지 의도한 건지 몰겠다만. 이미 그녀를 '뉴친자'로 칭송하게 만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하이브가 뭐 하는 것이냐 성토했고(분명 멤버들은 참 괴로운 시간이고, 없으면 더 좋았을 상황이지만) 모두가 뉴진스 컴백만을 기다리게 만들었다. 정면돌파라는 게 이렇게 영리해 보일 때도 있구나 했다. 그것은 그리고 분명 그녀의 실력, 성과, 넘치는 자존감과 자신감, 매력 있는 독특한 캐릭터가 뒷받침이 되었다. 이제 그 언니는 센 언니의 대명사, 직장인에게 원탑이 되어버렸다.
'직장인 공감'이라는 게 처음엔 나만 그런가 했다. 그녀처럼 참아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들이받아 보기도 했다. 나 역시 차라리 '맞다이(맞짱)'를 선호하는 편이라. 그런데 지나고 보면 대부분은 참는 편이, 우회적인 게 더 나았다는 것이 오랜 직장생활의 결론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뾰족한 사람'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거 저거 안재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욕하고 분노를 표출한다는 게 여느 직장인이라면 가당키나 했겠느냐는. 실력 있는 언니의 폭탄 발언에 일종의 카타르시스, 대리만족을 느꼈다. 시원하기도 부럽기도.
애초에 그녀는 SM에서도 월급쟁이 신화였고, 하이브에 분명 엄청난 걸 약속받고 갔겠지 했고, 그렇게 엄청나게 사랑스럽고 실력 있는 뉴진스를 키워내다니 참 멋지다 했었다. 그리고 이제 대기업 하이브와 맞짱이라니.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이후 그녀는 어떻게 대응할지가 더 궁금해졌다. 이제 온 나라가, 나아가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그녀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녀를 이렇게까지 거물로 키워놓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최악의 위기 상황, 그리고 하이브다.
## 리스크 관리 실패한 하이브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건. 그녀 역시 비판을 피할 순 없다. 아마 하이브 경영진이든 방시혁 의장이든 처음부터 마찰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본인 말대로 '월급쟁이 사장'이면 회사 전체로 봤을 때, 자기 새끼만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을 수 있다. 커뮤니케이션 과정도, 그렇게 거칠게가 아니라, 좀 더 영리하게, 혹은 가끔은 져주면서 책임 있는 레이블 대표로 활동하는 것이 더 성숙한 어른의 자세일 것이다. 그녀에겐 실력, 그리고 뉴진스라는 큰 레버리지가 있으니 하이브를 영리하게 움직일 수 있지 않았냐는 것.
하이브가 오죽하면.의 생각이 들지 않는 게 아니다. 도저히 핸들링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되니까, 지금 가장 성과가 좋은 뉴진스에 타격이 갈만한 상황인데도. '경영권 침탈' 시도, '배임' 같은 걸 꺼내 들며 그녀를 정리하려고 했겠지. 하지만 민희진 기자회견 앞두고 '주술' 보도자료를 내는 순간. 하이브는 리스크 관리를 정말 못하는구나 싶었다. 국정농단의 기억을 흩뿌리려는 모양인데. 정부도 아니고 사기업 임원이 점을 보고 굿을 하든 무슨 문제가 되겠나. 사람들이 이제 그런 언플에 속지 않는다. 그녀가 주장하는 '마녀 사장' '미친년 만들기'를 공식 보도자료로 인증했을 뿐이다. 도대체 우리나라 엔터 기업 중 최고라는, 전 세계 케이팝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하이브가 왜 이런 대응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시작부터, 그녀를 데려올 때부터 저런 사람인지 몰랐나. 돈을 더 쥐어주든, 다른 방식의 보상을 취하든 협상이 먼저였을거다.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 계약서를 쓸 때부터 소통 전반에 대한 비밀 유지 의무나, 지금의 이런 사태까지 내다보는 안전장치를 더 세밀하게 넣어두면 좋았을 거다. 또 멤버들이나 부모님들을 포섭하는 방식. 꼭 지금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뉴진스 계약기간까지는 드러나지 않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게 맞지 않나. 도저히 안될 상황이라 감사에 나서는 게 최선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하이브 공식적인 입장이 아닌, 어디 언론사 한 곳에 흘려서 먼저 알린다든가, 혹은 그녀가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 '주술' 같은 얘기를 꺼내고 싶었어도 공식 자료가 아닌 기자가 취재하게 만드는 게 낫지 않나. 하이브는 "상황이 진행 중이라 확인해 드릴 수 없습니다" 정도의 점잖은 대응만으로도 얼마든지 내용을 알리고 여론을 움직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느 시점엔 상황에 대한 조목조목의 설명의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방식은 대기업답지가 않다. 하이브에서 '공식' 입장으로 일일이 알리며 패를 다 까고, 그녀가 하이브를 물고 늘어질 여지를 더 키웠다. 뉴진스 홀대론까지 들추게 됐다. 이제 여론은 경영권 침탈 시도의 '대화' 수준이 아닌, 실제 움직임, 적어도 투자자 접촉 증거든 뭐든 더 확실한 것을 원하고 있다. 리스크 관리가 이 정도 수준이란 걸 보여준 것이, 이번에 하이브가 보여준 가장 큰 리스크가 아닐까 싶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업계 상황이나 실상은 자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하이브 레이블을 참 좋아하는 팬의 입장에서 안타까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