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꾼 듯, 헤어나오지 못했던 감동
삐딱하게 기대 창밖을 보며 잠을 갈망하고 있는데 여기저기서 뭔가 두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카파도키아의 대표적인 관광상품인 열기구였다
황급히 엄마를 깨워 그 모습을 감상했다. 내일이면 우리도 저 열기구에 몸을 싣고 하늘 위를 떠다니리라. 거대한 풍선만큼이나 내 마음도 부풀어 올랐다.
- 김정희, <어설픈 모자의 좀 모자란 터키여행> 中
서로 연결된 약 200개의 지하도시, 데린쿠유 (Derinkuyu)
단단한 바위와 땅을 파헤쳐서 이런 도시를 만들어내다니 절박한 상황에 닥쳤을 때 발휘되는, 한계를 모르는 인간의 위대함에 엄마는 감동과 감탄을 금치 못하신다. 거기서 그쳤으면 좋았을 텐데 엄마는 당신이 느끼시는 감동을 자꾸만 나에게 강요하신다.
“하이고야... 참말로 그 옛날에 우째 이런걸 만들었겠노 그자? 옛날에 장비도 없었을낀데 이 많은 돌들을 우째 파냈겠노...”
“신기할 것도 많다. 팔만 하니까 팠겠지. 이 지방이 옛날에 화산재로 형성된 지형이라서 대충 파도 잘 파지겠구만 머 그래 호들갑이고...”
그냥 “예 맞습니다!”하고 끝내면 될 것을 옛 사람들의 노고를 깎아내리면서까지 괜스레 삐딱선을 타고 있는 나도 참 문제다. 이놈의 성질머리하곤...
무서운 이야기가 숨어있던 계곡, 으흘라라 계곡 (Ihlara Valley)
으흐랄라 계곡은 한때 비잔틴 수도사들의 휴양지로 각광받았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거기까지... 이슬람이 권력을 잡고부터는쫓기는 신세가 되어 절벽 아래쪽에 동굴을 파고 은둔생활을 해야 했다.
동굴 안에 있는 교회 내부에는 다양한 프레스코화들이 있는데 자세히 보면 사람들의 눈 부분이 모두 뻐끔하게 파헤쳐져 있다. 아마도 눈을 제거하면 영혼도 함께 제거된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고... 눈까리를 고마 다 파헤쳐놨네. 무서버라... 이런 거 보면 야들도 참말 지독하다 그자?”
“아냐... 그냥 그림만 다 지우라고 위에서 시켰는데 공무원들이 일하기 귀찮으니까 눈만 파내면 영혼도 없어진다카면서 윗사람을 속였을거야. 자기들 편할라고...”
열기구에 몸을 싣다.
창문 틈새를 파고드는 싸늘한 공기에 새벽 4시쯤 눈이 떠졌지만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지락거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열기구!!!”
곧바로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가 차가운 공기에 다시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갔다. 5월의 새벽은 아직까지 쌀쌀하다.
씻을까말까 고민하다가 뭐 잘 보일 사람도 없는 관계로 청결함은 포기하기로 하고 이불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뒤척이다가 30분 후 숙소 앞으로 픽업 나온 투어차량에 부스스한 몰골로 탑승했다.
도착하니, 우리가 탑승할 열기구는 아직 일어서지도 못했는데 벌써 둥둥 떠다니는 팀들을 보면서 빨리 타고 싶은 마음도 함께 둥둥 떠올랐다. 달빛 아래 드디어 우리 열기구도 스멀스멀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파일럿의 숙달된 손놀림으로 불길은 더욱 힘차게 타올랐고 카파도키아 대지를 일깨우는 눈부신 일출과 함께 마침내 우리도 하늘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엄마도 나도 다른 사람들도, 모두들 환상적인 풍경에 입이 떡 벌어져서 감탄사만 내뱉는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두둥실 떠다니며 따뜻한 햇살을 맞는 느낌이 무척이나 좋았다. 엄마의 뒤에서 그 자그마한 체구를 감싸 안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쥑이지예~.”
어머님 손에 디카 한 대 놔 드려야겠어요.
로즈밸리는 바람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형성되었는데, 특히 해질녘이 되면 기암괴석의 계곡들이 장밋빛으로 물든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한 일몰의 비주얼은 카파도키아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힌다고 한다.
엄마는 트래킹 하는 내내 쉴 새 없이 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시며 감탄과 한탄을 반복하셨다.
“아유... 저 풍경 좀 봐봐라. 저래 이쁜데 폰으로 찍으니까 다 표현이 안 된다.”
“아이고 우째 저래 이쁠꼬... 저래 이쁜데 참... 폰으로 찍으니까 표현이 안 되네.”
“아이고... 진짜로 이쁘ㄴ...”
“그래서! 뭐! 이쁜거 아는데! 우짜라꼬요? 지금 카메라 사달라꼬요?”
좋은 소리도 자꾸 들으면 지겨운데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바람에 못 참고 버럭해버렸다. 하긴, 줌도 안 되는 구형 휴대폰이라 사진이 나와봤자 얼마나 나오겠는가. 게다가 명암 차이가 심한 일몰 사진은 더더욱...
여행을 다니며 셀카 말고는 내 사진이 거의 없는데 이 참에 엄마 손에 디카 한 대 놔드리고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 드리면 내 사진을 좀 건질 수 있으려나...
숙소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돌아왔다.
내일은 우리 아들이 어디로 데려가 줄려나~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엄마는 잠자리로 직행하셨고,
내일은 또 우리 엄마를 어디로 데려가 드리나~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할 일을 한숨을 쉬며 하는 것 보면 어쩌면 난 여행체질이 아닐지도...
*이 글은 김정희 작가의 <어설픈 모자의 좀 모자란 터키여행>의 일부를 발췌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