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담

'즐거운 어른' , 어르신. 우리 엄마에게(2)

즐거운 어른 -이옥선 산문집을 읽고 (2)

by Wishbluee

'즐거운 어른', 어르신. 우리 엄마에게(1)

이 글은 세편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위 링크를 누르시면 전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엄마는 맨날 입버릇처럼 스위스에 가고 싶다고 하셨는데
자꾸 편도만 끊어달라고 하셨다.
돌아오는 비행기표는 필요 없다면서.

가족 내 가족.

3000만큼 사랑하고 3000만큼 밉고.

애증의 관계 그 어디선가에서

감정의 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밖으로 끄집어내지 못하는 말을 속으로 삼키며

하셨을까 짐작만 하는 이야기.


엄마, 그런데 나도 스위스는 편도도 힘들다.

같이 '걸어서 세계여행 스위스 편'이나 같이 봐요.


그래서 두 번째 글 표지사진은 스위스

엄마가 가고 싶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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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는 요리를 너무 좋아하셨다.

아빠가 만든 닭볶음탕은 한 입 맛보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야 말게 되는 마법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한바탕 설사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엄마가 한 음식이 맛이 없다며 식사시간마다 반찬타박하던 우리 아빠.

지금은 네 엄마가 한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며 칭찬세례를 하신다.

심경의 변화의 이유가 뭘까요

정말로 엄마 솜씨가 좋아져서 그런가.

혹시 산더미 곰국이나, 카레 한솥이 무서워서 그러시는건 아니시겠죠..


근데, 엄마 우리 남편은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커서

영 걱정이네.

하나하나씩 가르쳐주려고요.

그런데 요새는 조금씩 해보더니

어제는 백종원 계란볶음밥 했다며 해줄까? 하는데

저는 조용히 거절했어요.

이럴 때 오 맛있겠다 호들갑 떨면서 달라고 해야 한다는데

그 깜냥이 안되네 내가.

그래두 김서방 기특하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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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
가부장제가 나빴다곤 하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가부장이라면 집안의 모든 문제에 책임감을 가지고 가정을 통솔하며 집안의 먼 일가친척도 내 사람이라 여겨 같은 성씨의 일족을 끌어안으려 했다. 또 이혼을 하더라도 남자 쪽에서 자녀에 대한 부양의 의무를 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 다른 말이 필요 없었다. (이것이 옳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p22
코로나 동안의 학습으로 굳이 명절이나 제사에 같이 모이지 않는다고 하늘이 벌을 주거나 집구석이 망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게 되었다.
p23
이 모든 전통이니 가풍이니 하는 것들이 남의 집 딸들 데려다가 자기네 조상 섬긴 것밖에 안 된다는 걸 너무나 실감 나게 느낀 덕분이다.

엄마는 나보고 수녀가 되라고 하셨다.

아빠는 버럭하고 화를 내셨다. 왜 애한테 그런 말을 하냐고

엄마가 내게 건넨 그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속에는 중의적인 의미가 여러 개 들어 있었겠지.

그 어린 나이에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왠지 그 말은 아직도 기억 속에 깊이 남아있다. 충격적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무언가 곱씹을만한 여운이 있어서가 더 큰 이유 같다.

여자가 결혼해 봤자 순 손해 나는 장사밖에 안 되니 그냥 수녀나 돼라.

그 시절의 엄마는 그만큼 고되셨던 것이다. 지금이야 결혼해서 일찍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지지고 볶고 사는 나를 보며, 너무 잘했다. 잘되었다 생각하시고 계시지만.

세상에 순리라는 것이 있다고 하지만, 그걸 지키고 사느냐 마느냐는 살아가는 개개인의 자유겠다.

하지만, 인생은 하나이기에 남의 인생보다는 내 인생에 빗대어 자식의 행복을 바라기 마련이니.

엄마에게 다시 한번 여쭈어 보고 싶다.

그땐 그러셨지만 지금은 어떠시냐고.


가부장제니, 남의 집 딸 데려다가 자기네 조상님 섬기느니 그런 말들이 나오지 않게


그저 사랑해서 결혼해서 사랑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그러면서 아무 문제 없이 동화처럼 사는 행복한 삶이 말도 안 되게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쩌면 지금 내 삶이 엄마에게는

그렇게 비추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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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발목이 돌아가셨는데

그걸 다 낫고 나서야 나한테 말씀하셨다.

자주 전화했으면 그런 소식쯤 알 수 있었겠지만

늘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자주 하지 않은 탓에, 한참이 지나서야 듣게 된 소식.

불효도 이런 불효가 있을 수 있을까.


출가외인(出嫁外人)


호적에서 내 이름이 지워진 것을 보고, 눈물이 났던 혼인신고.

나는 이제 내 가족에 속해있지 않은 것일까


재행길에 정자에 앉아서 나도 모르게 서러워 엉엉 울었는데, 영문도 모르던 내 신랑은 그저 토닥토닥거리기만 했었지.


결혼하고 내 가정이 생기고 나니, 엄마 아빠는 힘든 일이 생겨도 내게는 연락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프거나 다치셔도 알리지를 않으신다.

출가외인이라서 그렇다라고생각하면 서글프지만

네 가정이나 잘 챙기고 살아라. 이제 너에게는 다른 의무가 있지 않겠니 하는

다정한 배려라고 생각하면 또 애달프고 가슴이 아프고 한편에는 고마운 마음이 든다.


좀 더 자주 연락할게요 엄마.

그런데 사실 우리 엄마 맨날 바빠서 전화도 잘 안 받으시긴 한다.

이런 부분이 좀 멋지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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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9
친구들이 말하기를, 메이커 없는 병만 없으면 아직 괜찮단다

웃프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지?

그래. 맞다.

건강검진 할 때마다, 한 개 두 개 혹이 생긴다.

뭐 하나는 통째 떼어내기도 했는데.

그래도 브랜드 있는 병. 들어본 적 있는 병이 아직 없어서 참 다행이다.

슬프게도 아빠는 그런 병을 앓고 계시고, 다행히 엄마는 그런 병이 없으시네.

늘 움직이시는 탓에 건강하신 건지. 그런 기질이 참 이럴 때는 고맙다.


엄마는 아직 괜찮은 걸로.

나도 아직 괜찮은 걸로.

앞으로도 오랫동안 좀 괜찮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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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5
남편이 가고 휑뎅그렁하던 시기를 지나고 나니 나는 이런 황금의 시기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럴 땐 아무도 잔소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다행이다.

이옥선 씨는 남편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남은 삶을 즐겁게 보내시기로 마음먹으신 듯하다.

남편이 있었을 때는 있어서 좋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즐기는 즐거운 어른의 삶.


요새는 예전처럼 70대에 죽음으로 인한 이별이 흔하지 않은 것 같은데

작가님의 남편분은 시인이셨는데, 어느 날 넘어져서 다치시고는 그것 때문에 돌아가셨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사건사고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고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감내해야 하는 남은 자의 몫은

또 그 나이에 따라 크기가 다른 모양이다.


엄마 아빠는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두 분이서 이제 드디어 균형 잡힌 삶을 사시는 것 같은데,

되도록이면 건강하게 힘들지 않게 노후를 보내시길 바란다.

이것 또한 동화 같은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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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
별일 없는 일상을 가족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이 전업주부로 살아온 나의 할 일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언젠가 내게 말씀하셨다.

"나도 우리 엄마 있다!"

시골에 계신 외할머니와 통화하고, 하신 그 말씀이 또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엄마는 그저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라면

물리적인 거리에 상관없이

그저 같은 하늘아래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엄마는 내게 그런 사람.

그리고 나도 아이들에게 그런 사람이겠지.

단지 이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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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8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고 더 행복한 상태로 살지 못했음을 후회할 뿐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이 있다면 당장 그것을 해야 한다.

마지막을 생각해야 하는 나이인가.

70대가.

제발 아니기를.


그저 인생의 반 이상을 살아내었다 여기며

지혜롭게 남은 시간을 보내려고 다짐하는 나이이기를.

그래서 가볍게 화두를 던지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얼지 고민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든다.


좀 더. 좀 더 함께 하고 싶으니까.

마지막 같은 건 그냥 생각하지 않고 싶다.



이옥선 산문집

'즐거운 어른'은 앞부분에 정말 생각해야 할 거리가 몰려있어요.

그러다 보니 50페이지도 가지 않아서 붙인 포스트잍이

대체 몇 장인 건지.

한 자 한 자 전하고 싶은 소소한 이야기들이 이리도 많았는지.

아직도 바쁜 우리 엄마

시간 좀 내주오.

내게 데이트할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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