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르렁. 호랑이띠. 그.
"Whooo~ah!"
여기 한 여인이 있다. 나이는 스무 살 후반정도. 이제 막 시집을 간 어여쁜 새댁인 것 같다.
어쩐 일일까. 지금은 새벽 세시인데, 거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흑흑 서럽게 울고 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세요.
갓 결혼한 부부인데 남편은 보이지 않네. 어디 간겨. 혼자 울고 있는 마누라 놔두고 어디간겨.
아니, 대체 무슨 사연 이길래!
서럽게 우는 저 여인네, 마음이 아프다. 보고 있는 사람이 다 속상하게 처량하게 울고 있네.
오래전, 내 모습이다. 갓 시집온 것도 맞다. 결혼 한지 한 달 정도 되었을까.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다.
자,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다음 시간에.
... 가 아니라(장난, 장난, 휴. 식은땀)
후, 숨 한번 고르고 이야기를 하겠다.
첫 번째. 나는 잠귀가 매우 밝다.
두 번째. 나는 소심한 성격이다.
이십 대 후반의 나를 소개하자면 대략 이러했다.(지금도 그렇지만)
"신혼부부라서 좋겠네~ 깨가 쏟아지겠어~."
"그래서 하품을 하나 봐~ 어머~ 밤에 안 자고 뭐 했어요??"
"어우, 뭐 했을까아~~."
"주책이야, 정말."
하아. '뭐'라도 했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거 모르는 소리들 좀 하지 마쇼. 어흐~ 속 터져.
하지만 나는 '소심'하니까, 배시시 웃으면서
"아이, 몰라요. 그러지들 마세요."
그래요. 신혼부부니까 뭐 했을 거라 생각하지. 뭐 할 정신이 있어야 뭐를 허지. 내가 밤마다 울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남편의
코골이 때문.
그래요.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한숨이 주욱 죽 난다.
그 당시의 나는 차마 남편을 깨울 수가 없었다. 다음 날 피곤해할까 봐! 근데 이 바보는 지가 피곤할 거는 계산에 없었다.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노력했지만. 잠귀가 밝으니 그 소리를 외면할 수가 있어야지! 잠들 수 없던 날이 수없이 반복이 되니. 미쳐버리지. 안 미쳐버리겠어? 그러니 한 밤중에 이걸 도대체 어떻게 해. 뭐슬 진짜 어떡하라고. 깨울 수도 없고 잘 수도 없고. 그래서 그렇게 거실 카페트나 쥐어뜯어가면서, 우는 것도 또 들릴까 봐 숨죽여서 울었어요. 내가.
닥터 스트레인지 씨, 시간 돌리는 인피니티 스톤 초록색 그거, 나 좀 빌려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거 그거 말이야. 그걸 이용해 돌아가서
과거의 나 등짝 좀 때려주게.
저게, 저게 멍청이지 어휴!! 답답!! 답답!!
그렇게 밤마다 울먹이고 한 열흘이상 참다가 결국 괴롭다고 고백을 했어. 그러니 열흘이나 잠을 제대로 못 잔 거지. 왜 그랬을까 정말.
비중격 수술을 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비염에 좋대니 작두콩을 사다가 (기왕이면 오리지널을 사겠다며) 그 두꺼운 것을 식칼로 자르려다가(작두로 잘라야 한다) 손가락을 자를 뻔하고, 영양제를 사서 먹이고,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서로 부단히 노력했다지.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글쎄, 연분홍색 벽지가 있는 방 안에 신생아들이 좌라락 누워있는 거야. 근데 그 애기들이 막 빽빽 우는 거야. 너무 당황해서 이걸 어떡하지 어떡하지, 이 많은 울고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달래지? 하며 허둥지둥했잖아. 그런데 듣다 보니, 그 애기들이 우는 소리가 너무 이상한 거야.
어떤 소리로 울었는지 알아요!?
드르렁드르렁 커억 컥컥컥...커어어어어억!!!!
허허허 허허허 허... 그리고서 바로 깜짝 놀라 깨었어. 한 밤중에. 기가 막혀서. 옆을 돌아보니 아니나 달라. 드르렁드르렁 코를 고는 내 사랑 당신.
꿈시리즈 더 들어볼라요?
어느 날은 오토바이가 막 부웅 오는 거야. 나한테 달겨드는거야. 놀래, 안 놀래? 꿈이지만 너무 무섭잖아. 근데요. 그 오토바이가 부웅하고 오는 게 아니라. "드르르르르렁 커억 커아아아아악 캬악." 이러고 온다고요!!!
꿈에서도 단박에 알아챘잖아. 아. 또 코를 골고 있구나.
"아따, 환장하긌다. 진짜." 하며 깨버렸어요.
잠자긴 그른 거지 그날 밤.
웃겨요? 난 안 웃겨요.
(흥)치뿡치.
그래서 지금 어떻게 됐냐고요?
그때처럼 거실에 나가서 흐느껴 울지는 않아요. 다행히도. 드르렁 소리가 나면, 툭 건드리면서.
오빠, 코
짧게 말하고 끝냅니다. 그러면 돌아눕더라고요. 어깨를 굽혀 팔을 안쪽으로 꼬아붙이고요. 그럼 또 안쓰러워요. 팔 아플 것 같고. 코 골 때 보니까 커억 컥 하는 소리도 너무 걱정되고. 혹시 수면 무호흡증 이런 걸까 봐.
병원? 가보라고 했죠. 그런데 어디 제 얘기를 듣나요. (어휴) 괜찮다고만 하지. 그런데 궁극적인 해결책이 뭔진 모르겠어요. 그건 차차 노력해 볼게요.(병원도 설득해서 보낼 생각이에요)
미안하니까 거실에서 자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봤자 거실에서 코 고는 소리 다 들린다"며 그냥 "내 옆에서 자 코 골면 툭 치기라도 하게." 퉁명스럽게 한 마디하며 내 옆에서 잠들도록 말로 붙들어 놓습니다.
혼자 살다가 그러다가 제대로 숨 못 쉬어서 큰일 난 사람도 있잖아요. 나랑 같이 사는데, 거실에서 혼자 자다가 큰일 나면 어떡해요. 사실 잠은 나만 못 자는 거 아니고, 저 사람도 코를 고느라, 마누라한테 미안해하느라 잘 못 자는걸요.
우린 서로 피곤해 죽겠는데도 굳이 한 침대 쓰고, 한 이불 덮고. 아주 사이 조아 죽어요. 증말.
결론 : 코 골아도 내 남편이 좋다.
독자들: 헐. 괜히 읽었다.
메롱, 결론이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럼 빠이!
사진: Unsplash의Anton Lochov
덧. 글제목에 데하여
남편 호랑이띠 + 드르렁 코를 곰
그래서 드렁코 터이거.
하하.
너무 가벼운 글이었나요? 한번 둥둥 뜨는 글을 써 보고 싶었습니다.
읽고 즐거우셨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