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상은받지 못했지만...
브금:데이식스(한페이지가 될 수 있게)
내가 사는 지역은 아이들 줄넘기 실력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중 뛰기(쌩쌩이) 좀 한다는 애들이 이곳 놀이터에서 실력자랑을 좀 해보더라도, 웬만큼 탁월하지 않아서는 아마도 기대하던 선망의 시선 같은 것은 받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매년 줄넘기로 전국에서 꽤나 좋은 등수를 받기도 한다. 5명 중 2명은 줄넘기 학원을 다닌다.(아마도) 아니면 방과 후 줄넘기 라도 하고 있다. 그래서 동네 엄마들끼리 농담으로 이 동네는 '줄넘기 특구'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러한 줄넘기 정글에, 그 중요성도 모르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그 발을 담갔으니. 나의 꼬맹씨는 하필 그중에서도 가장 잘하는 그룹에 친한 친구들이 있어서, 늘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그 아이들 뒷모습을 좇아서 열심히 줄넘기줄을 넘겨야 했다.
꼬맹씨가 다니는 줄넘기 학원에서는 매년 두 분기, 큰 줄넘기 대회에 출전을 한다. 여름에는 출전을 못했으니 겨울에는 출전신청을 해서 드디어 오늘이 그동안 연습했던 실력을 선보일 바로 그 대회날이다.
본격적으로 대회가 시작되면, 나이순으로 해당 종목 심사를 치른다. 종목은 여러 가지이지만, 우리 꼬맹씨가 출전할 종목은
1. 번갈아 뛰기
(두 발을 번갈아서 빠르게 뛰듯이 줄넘기를 넘긴다. 두발 중 한 발 개수만 센다. 30초 동안 센다.)
2. 이중 뛰기(소위 쌩쌩이. 30초 동안 개수를 센다.)
3. 2인 뛰기(1분 동안 2인이 동시에 줄넘기 하나로 넘는 개수를 센다.)
4. 왕중왕전 (1번에서 45개를 넘긴 아이들만 참가 가능. 참가한 아이들 가운데에서 1~3등을 뽑는다.)
이 외에도 단체전 등, 여러 종목이 있다.
대회 참가를 결정한 후, 최소한 한 달 정도는 학원에서 선수들은 대회 준비에 매진하느라 여념이 없다. 꼬맹씨도 매일 소소한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일주일에 두 번씩, 열심히 연습을 했다.
대회준비물품 중에는 줄넘기 전용 운동화가 있다. 그런데 이 운동화는 평소에 신을 수도 없고 사이즈를 아주 따악 맞게 사야 해서, 줄넘기가 끝나면 거의 폐기가 된다고 봐도 무방한데, 3만 원 조금 넘는 가격이라 구매하긴 너무 아까워서 보통 대회가 끝난 친구의 것을 빌리곤 한다. 이번에도 친구에게 빌렸다. 사이즈는 발가락이 아플 정도로 꽈악 맞다. 한 치수 더 큰 것은 조금 헐거워서 신을 수가 없었다. 애매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1. 번갈아 뛰기
아이의 순서가 되었다.
관람석에서는 뒷모습만 볼 수 있어서 열심히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었다.
뒷모습만 봐도 긴장된 아이의 앞모습을 느낄 수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집중! 휘슬이 울렸다.
아! 잘하고 있다가 줄넘기줄에 한번 걸렸다.
저렇게 걸리면 순간 멘털이 무너져서 집중력을 잃을 수도 있는데!!
30초. 한번 걸려서 다시 줄을 걸어야 했지만, 나머지 시간 집중력 있게 잘 치러냈다. 다행히 45개 이상 넘어서 왕중왕전 참가 할 수 있는 자격과 금메달을 얻어냈다.
2. 이중 뛰기
이번에도 역시 뒷모습만 촬영할 수 있었기에 숨죽이고 촬영을 하는데. 아. 이번에는
1번, 2번, 3번... 3번이나 걸렸다.
2번쯤 연속으로 걸렸을 때 거의 줄을 내팽개치듯이 넘겨 다시 거는 걸로 보아,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고 있는 앞 얼굴이 바로 예상되었다. 걸음걸이만 봐도 아이의 마음이 바로 전달되니 안타까워 얼른 퇴장하고 올라오는 복도로 마중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열심히 뛰어서 발갛게 상기된 양볼을 축 늘어트리고 눈꼬리가 꾹 내려온 우리 아기. 내 딸이 저기서 힘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울음을 터트린 내 새끼가 내게 와서 포옥 안겼다. 얼마나 속상했으면 얼굴을 묻고 꺼이꺼이 한참을 몸을 떨며 흐느끼는데, 아휴. 줄넘기가 뭐라고. 내 새끼 마음을 이렇게 아프게 하나 싶고. 열심히 했는데 실수한 그 심정이 얼마나 창피하고 속상할까 싶어 안쓰럽고. 토닥토닥 한참을 등을 두드려줬다. 한참을 말랑한 볼이 흐늘거릴 때까지 울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는 묻는다.
"엄마. 나 운 거 티 많이 나요?"
눈물을 훔치며 쳐다보는 네 눈이 너무 사랑스럽네. 아직도 눈가가 발간데.
"괜찮아. 좀 울었음 어때. 울만 했어."
다독이며 선수들 자리로 보냈다. 눈물을 훔치며 다시금 입을 앙다무는 우리 아기. 쪼꼬미. 꼬맹씨.
뒷모습이 제법 다부지다. 연약한 너의 어깨에 잔뜩 들어간 힘을 느끼며 토닥이던 손을 거둔다.
여러 생각이 스쳤다.. 혹시 운동화 때문인가. 다음부터는 새로 사줘야 할까. 아니면 오늘 입힌 바지가 문제였나.. 뭐에 걸린 거지. 두 번이나 걸리는 걸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저번 대회에서는 하지 않았던 실수였었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 다시 경기가 재개되었다.
몇몇 단체전이 끝나고, 드디어 2인 뛰기 시간이다.
친구와 마주 보고 우리 꼬맹씨가 줄을 잡고, 친구가 꼬맹씨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습. 후우.
두 아이가 숨을 고른다. 잡은 줄에 힘을 꽈악 준 꼬맹씨.
탁. 탁. 탁. 탁.... 탁탁 소리조차 희미하게 들릴 정도로 미세하게 공중으로 띄워지는 두 아이의 발돋움이 메트로놈처럼 정확하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두 아이.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는 내게도 그 긴장이 옮겨진다. 꿀꺽. 침 삼키는 시간조차 정지되어 있는 듯하다.
경기장에는 온통 탁탁탁.. 소리와 10초. 20초. 초 세는 소리뿐.
드디어 경기가 끝났다.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다. 두 아이는 마치 기계처럼 정확한 박자에 정확한 높이로 뛰었다. 두 아이가 심사위원에게 달려가서 점수를 확인한다. 오! 마치 토끼처럼 서로 마주 보고 양손을 가슴께로 가져가서 기도하듯 꼭 맞잡고 폴짝폴짝 뛰며 퇴장하는 모습! 무언가 좋은 결과를 얻었나! 두 마리 귀여운 토끼 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신이 나서 퇴장했다.
두리번두리번.
나의 쪼꼬미, 내 새끼 꼬맹씨가 엄마아빠를 찾는 것 같다. 얼른 손을 들어 부른다.
"여기야, 여기!"
엄마를 발견한 아이의 눈빛이 눈부시게 반짝인다. 역시나 빨갛게 상기된 양볼이 한껏 부풀어 오른 듯 보인다.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온 아이가 귓속에 속삭인다.
와!!!!!
너의 미소는 햇살같이 강렬하게 내게 퍼지고... 그 웃음에 나는 너무 행복한 기분이 되어 내 양볼도 발갛게 상기되어 간다. 너와 같이 내 마음도 한껏 부풀어진다.
냠냠, 귤 한 개를 맛있게 먹어치우고 꼬맹씨는 자신의 선수 자리로 되돌아갔다.
남은 경기를 모두 치르고, 아쉽게도 왕중왕전은 중도탈락으로 경기는 마무리되었다.
아이가 속한 줄넘기 학원이 종합성적 1위의 영광을 거머쥐었다.
왕중왕전에서 1,2,3,4등 한 아이들은 모두 상을 받았고, 단체전도 상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2인줄넘기는 이벤트성으로 배정된 상이 없다고 한다.
두 아이는 너무 서운해했다. 나도 너무 아쉬워서 선생님께 문자를 드렸다.
서운해요..선생님. 아이들 너무 열심히 했는데...
집에 오는 길 꼬맹씨는 늘어지게 뒷자리에서 잠을 잤다. 땀투성이에, 빨간 볼 색이 가시질 않는 뽀얀 내 새끼 모습. 사랑스러워서 두 번 세 번 다시 돌아본다.
새벽부터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 작고 여린 몸이 하얗게 재가 되어 부서질 만큼 최선을 다해 열정을 불태웠을 오늘의 너를 보며, 오늘 이 대회를 준비하길 잘했다. 하며 생각해 본다.
오늘 너는 한 편의 스포츠 영화 같은 하루를 살았다.
하루 안에 너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있었다. 시련 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절망 속에서도 다시 불사조처럼 일어나는 소중한 경험들을 약식으로나마, 잘 해냈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하루들이 쌓여서 눈부시게 빛날 너의 미래에 풍성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너의 드라마. 꽤나 멋있었어.
넌 이미 내게 최고의 선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