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잡문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ishbluee Dec 03. 2024

감태 먹다가  심쿵

너 엄마한테 플러팅 하니?

 히야~ 맛있겠다.


 반듯하게 잘라놓은 구운 감태에 기름이 자르르르. 입맛을 다시던 남편이 젓가락으로 감태 한 장을 집어 들고 입에 넣는다. 우물우물

"~~ 으음~~ 역시나 너무 맛있다. 맛있다."

연신 말하며 양손이 쉬지를 않는다.

홈쇼핑으로 감태를 무려 10장이나 산 나 자신이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감태 한 장, 밥 한 술 감태 한 장, 밥 한 술. 끊임없는 쳇바퀴처럼 하염없이 젓가락질을 하던 남편이 말한다.


감태에서 무슨 트러플 향이 나냐.


감태 먹다가 웬 봉창 두들기는 소리여.





오우. 여보 그것은 좀 아닌 것 같은데.


 남편의 말이 조금 신경이 쓰이고 걱정이 된다. 별 말 아닌 것 같은, 그 한마디가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남편의 비염 때문이다.

 

 남편은 비염이 심하다. 그래서 냄새를 잘 못 맡는다. 그래서 가끔 상한 음식 냄새도 못 맡는 경우가 있다. 아주 심하게 나지 않으면,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입에 넣어 버리는 것도 몇 번 목격했기에, 늘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은 먹지 말라고 당부하곤 한다. 하지만 남편은 아까운지, 자꾸만 오래된 음식을 냄새도 못 맡으면서 맛을 봐버리고 마는 것이다.


"여보, 감태에서 무슨 트러플 향이 나. 그건 아닌 거 같아."


감태에서 나는 향긋한 내음을, 트러플 향으로 착각하다니. 애초에 당신. 트러플 향이 어떤 건지 정확히 알긴 하는 거지?


 나도 나이를 먹을 텐데.. 내가 없으면 저 양반 어떡하나. 애들이 아빠를 잘 챙겨나 줄까? 이런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아이들을 향해 괜한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얘들아 혹시 엄마가 아빠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가거들랑, 가끔 아빠한테 들러서 냉장고 음식들 유통 기한 좀 확인해 줘라. 아빠는 냄새를 잘 못 맡아서 상한 음식을 먹을 까봐 걱정이야."


 "엄마아!!! 왜 그런 이야기를 하세요!"


둘째가 발끈한다.


"엄마 오래오래 살 건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시냐고요!! 슬프잖아요!!"


둘째의 눈가에 눈물이 글썽글썽 맺힌다.


아이코 맞다. 나도 정말 주책이다. 혼자서 그만 생각이 앞서가서 고민도 없이 아무 말이나 내뱉었구나. 아직 어린 둘째는 자연스럽게 이런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들 텐데... 아이가 듣는 데서 어른스럽지 못한 소리를 했구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엄마가 미..."


미안하다.라고 하려는데 큰 애가 내 말을 가로챈다.

  

식사 중.

사진: UnsplashJacob Stone



"아빠가 먼저 하늘나라로 갈 수도 있잖아."

 

얼씨구, 저 녀석은 한 술 더 뜨네. 주책맞은 제 엄마에게 일침을 놓는 것일까. 살짝 얼굴이 좀 붉어지면서, 괘씸한 생각이 든다. 그럼 어디 나도 응수를 해보자. 어떻게 나오나 한번 보자.


"그래. 아빠가 먼저 하늘나라 가시면, 엄마는 누가 돌볼 거야?"


그랬더니 큰 애가 밥 한술을 무심하게 뜨면서.


"어. 내가 돌볼게. 어차피 난 결혼도 안 할 거니까. 같이 살자."


엄마? 내가 잘못 들었나?

어머나. 얘가 뭐라고 했지 지금?

심장이 갑자기 콩닥콩닥.

내가 예상하던 날카로운 대답이 아니다. 뭐라고 한 마디 더 하면서 비꼴 줄 알았는데.




 몇 년 전, 한참 사춘기를 하던 큰 아이를 달래서 가족 여행을 떠났을 때 일이다. 먹는 음식마다, 가는 장소마다, 짜증 가득한 녀석. 달래고 달래다가 지쳐서 여행기분이고 뭐고 만끽할 새가 없었다. 머릿속에 먹구름이 끼었지만 애써 구름을 제쳐 햇살을 끌어와서 꾸역꾸역 비춰야 하는 바로 그 엄마라는 위치 때문에, 정작 내 상태는  회색빛 인 것은 티도 못 내고 있었다. 그저 꾹꾹 눌러 참으며,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폐 건물이 보인다. 아니, 자세히 보니, 너무 낡아서 폐 건물인 것처럼 보이는 요양원이다. 문득 내 미래는 혹시 저 요양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자기만 아는 내 아이가, 늙은 나를 돌보겠다는 생각을 도저히 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양원 앞에는 무슨 , 도사견 같이 사나운 개를 목줄을 매어 묶어두었다. 나도 모르게 입이 체념하듯이 움직였다.


무언가 무시무시한 느낌.

사진: UnsplashLucía Garó


 "나중에 엄마 저런 무서운 데에다가 집어넣진 말아라."


 그러자 큰애가 무뚝뚝하게 말한다.


 "걱정 마. 저렇게 도망가면 개가 쫓아오는 것 같은 요양원엔 안 넣어둘 거야. 일반 요양원에 넣어 드릴게"


그럼 그렇지. 요양원에 엄마를 어떻게 넣어요? 왜 그런 이야기를 해요? 하는 답변은 기대할 수가 없었다. 굳이 그런 이야기를 건네서, 굳이 안 들어도 되는 답변을 들어버린 나는 애써 씁쓸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그냥 그동안 쌓인 섭섭함이 무심하게 튀어나온 것인데, 그마저도 당연하게도 큰 애는 알아주지 않았다. 사실. 내가 어른스럽지도 못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무슨 엄마가 저런 이야기를 애한테 하나. 아직 어린 자식에게 시험하듯 던진 한 마디는 처참한 점수를 얻었다. 그래 나도 참 나다. 하며 끌끌 혀를 찼다.


 다행스럽게도 둘째는 자고 있었다.




그랬는데... 그게 불과 몇 년 전인데. 이번에도 기대 없이 주책같이 던진 내 말에 큰아이는 그때와는 정반대의 답변을 달아주었다. 내가 잘못 들었나? 다시 한번 설레는 목소리로 물어본다.

 

"엄마 진짜 모시고 살 거야?"


큰 애가 내쪽을 무심한 눈으로 한 번 더 쳐다보더니.


응 엄마 걱정 말아 내가 알아서 잘 모시고 살게.


어머나...

어머나.. 어머나... 어머나... 어머나...

어머나.....


감태 먹다가 심쿵, 나 정말 심쿵.


어라. 그리고 보니 진짜 감태에서 트러플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으흥~

왜 이렇게 콧노래가 나오지? 궁둥이가 들썩들썩. 음악도 안 틀었는데 괜스레 흥이 나지?

빙그레 올라가는 입꼬리야. 눈치 챙겨. 너무 좋아하는 티 내는 거 아니냐고!

당최 내려가질 않네. 이 기분 무엇?






 네가 했던 저 말, 아마, 기억이나 하려나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려고 한 번 적어본다.

 

 네가 나를 심쿵하게 하는 순간을.


 그런데 다시 읽어봐도 너무 웃긴다. 무슨 가족끼리 이런 대화를 나누나 싶고.

 이상한 부분에서 심쿵하는 나도 웃기고.

 '기나 긴 사춘기가 지나고 우리 아이에게도 조금씩 마음의 여유라는 게 생기는 건가. 그래서 이제 엄마를 조금씩 돌아봐 주려나.' 하는 설레는 기대가 생겨서 내 마음이 심쿵하는 게 아닐까?


 내일은 우리 큰 애가 좋아하는 마라탕을 시켜줘 볼까나. 룰루~ 랄라~


내 기분~ 둥둥 떠올라~

사진: UnsplashChristopher Beloch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