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빵은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어느 날 골목 입구에 사는 언니가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거라며 빵을 들고 왔다. 슈퍼에서 파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소도 없는 빵 덩어리였는데 달큼하니 참 맛있었다. 그때 우리 집에서 주로 먹었던 빵은 식빵 정도였는데, 이것은 무슨 신세계인가 싶어 빵을 가져온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이거 어떻게 만든 거래?"
"할머니가 밥솥으로 만든 카스텔라라는 거 같던데..."
밥솥으로 빵도 만들 수 있다니 신기했다. 우리 집에서는 밥만 만드는데...
p48 '아무튼 빵은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황윤슬 작가님의 글 中
아, 추억의 밥솥 카스텔라.
엄마는 유행하는 그 빵을 만들어본 적이 있다. 그것도 여러 번. 안타깝게도 우리 집에서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엄마는 지치지 않았다. 빵인지, 떡인지 모를 식감에 계란말이도 아니고 카스텔라도 아닌 애매한 맛. 퐁신하지도 않아서 이제 그만 만드셨으면... 하는 괘씸한 생각을 했다. 차마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지만.
참 추억이다. 인터넷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 '카더라' 통신으로 맛있다는 말을 전설처럼 전해 들었으니, 그 맛이 얼마나 궁금했을까. 패기 넘치는 젊음으로 시도했을 테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던 젊은 날의 우리 엄마.
엄마, 엄마는 어땠어요? 밥솥 카스텔라는 엄마가 생각했던 바로 그 맛이었나요?
아니면 내가 그랬듯, 조금은 실망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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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아빠 표현대로라면 ‘하고잽이’였다. 어느 지방 사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꾸 뭔가를 배우고 시도하는 사람이라는 뜻쯤으로 나는 알아들었다.
학교를 다녀오면, 당시에 유행하던 부업거리가 거실에 펼쳐졌다. 한 번은 고무지우개를 만들었었는데, 한창 유명했던 둘리 캐릭터였다. 삭삭 눈코입을 붙이고 물에 삶아서 꺼내면 그게 지우개가 되었다. 완성한 만큼 가져다주고 돈을 받아오는 식이었다. 나는 우리 반 반장 생일 때 그걸 몇 개 챙겨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당최 집에 있는 법이 없었다. 늘 나가서 뭔가를 배워 왔다. 어느 날 집에 왔더니 열쇠가 없었다. 엄마도 없었다. 나는 너무 짜증이 나서 유리로 된 현관문을 발로 찼다. 그러고 나서 괜히 겁이 나 움찔하고 그대로 쭈그려 앉아서 한참 엄마를 기다렸었다.
그렇게 배우러 다녔던 많은 것 중, 내가 좋아했던 거 하나. 그건 바로 베이킹이었다. 엄마의 빵책에 빼곡히 쓰여있는 레시피를 훔쳐보며, 나도 어설픈 솜씨로 빵을 구웠다. 다른 건 너무 어려워 내가 만들 수 있는 건 오로지 머핀이나, 파운드케이크뿐이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재료를 뒤적거리고 도구를 제대로 정리도 안 하는 딸내미가 성가실 법도 한데, 엄마는 늘 말없이 뒷정리를 해주셨다.
엄마는 케이크시트도 만들고, 가끔 식빵도 구워오셨다. 그리고 카스텔라도 만들었다.
엄마가 만든 카스텔라는 밥솥이 아니라 오븐에 구워도 내 입맛에는 그다지 맛있지 않았다. 단 걸 싫어하셔서 설탕을 확 줄이곤 했기 때문이다. 식감은 퐁신했지만 달지 않으니 어린 내게는 싱거웠다. 나는 설탕을 팍팍 넣어서 만들었다. 그러니 내가 만든 빵들이 더 맛있었다. 사춘기 철딱서니는 '내가 엄마보다 낫네' 하며 엄마 앞에서 은근히 어깨에 힘을 주곤 했다. 엄마를 위해 설탕을 줄이는 배려 같은 건 내게 없었다.
엄마는 지금도 집에 있으면 답답하다며 어떻게든 일을 만들어 나간다. 도서관 봉사도 하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보러 가기도 한다. 나는 집순이라서 엄마가 신기하다. 이젠 연세가 지긋한데도 쉬지 않는 엄마의 열정이 늘 대단하게 느껴진다.
밥솥 카스텔라는 맛이 없었다. 그 맛없음이 그립다고 하면 이상한 걸까.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아, 또 밥솥 카스텔라 하나 봐.'
기대 없이 "어"하고 대답하고,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던 내 뒷모습을 엄마는 어떻게 기억할까. 섭섭한 마음을 피식 웃음으로 넘기고, 다시 계란을 휘젓던 엄마의 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두 아이의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면서도, 호기심과 열정이 가득했던 젊은 내 엄마. 무심히 대답하고 제 할 일을 하고 있던 심드렁한 표정의 나. 옆에서 다리를 달랑거리며 낙서하고 있는 내 동생. 한참 카스텔라를 먹고 있으면 돌아왔을 젊은 아빠. 다 같이 둘러앉아 한 입씩 맛보면서 두런거렸을 밥상까지도.
그립다. 다 그립다.
기억 속 그 장면으로 단 하루만 돌아가 볼 수 있다면,
나는 "엄마, 맛있어요"라고 말한 뒤
엄마 얼굴을 한참, 아주 한참 바라보고 싶다.
구석구석 기억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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