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칼로의 예술에 비춰본 나의 예술
내 그림은 고통을 담고 있다
프리다 칼로
프리다 칼로의 인생은 기구하기 짝이 없었다.
그녀는 어린시절 소아마비를 앓았고, 그 결과 오른쪽 다리에 영구적인 장애를 얻었다.
젊고 싱그러운 20대의 그녀가 길을 건너려고 했을 때, 거대한 차량이 그녀를 덮쳤다. 아름다웠던 그녀는 별안간 불청객처럼 찾아온 사고에, 좁고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워서 나무토막같아진 자신을 인내해야 했다.
그녀는 강했다. 자신을 가라앉게 두지 않았다. 대신 손에 붓을 들고, 붓 끝에 자신의 감정을 담아 표현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스렸다. 고통과 절망속에서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끝끝내 그 어둠의 터널속에서 희뿌연 한줄기 빛을 봐내려 노력했다.
프리다의 재능을 제일 먼저 알아 본 것이 바로, 남편인 화가 '디에고 리베라'였다. 그는 그녀에게 화가로서의 삶을 권유했다. 프리다는 자신의 그림은 그저 자신을 위로할 뿐이라며, 한사코 그의 권유를 거절했지만. 그녀의 작품은 결국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러나 디에고는 프리다를 죽을 때까지 고통의 늪으로 몰아세웠고, 둘은 그 지옥에서 뒹굴며 끊임없이 서로를 파괴하며 사랑했다. 그리고 그 파국을 거름삼아 그녀는 일생일대의 작품을 꽃처럼 차례 차례 여러송이 피워냈다.
마치 피투성이 시체가 묻혀있는 포도밭에서 자란 포도를 수확해서 빚어낸 포도주를 마시며 그 맛을 음미하는 것처럼 그녀의 고통이 근원인 그 작품들은 소비하며, 우리는 깊은 위로와 환희를 동시에 맛본다.
나 역시도 힘들 때마다 음악을 틀어놓구 그림을 그리고는 했다.
그렇게 내어 놓은 내 조각들은 나 대신에 울고 있었다. 그러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깊고 진한 위로가 느껴지기도 했다. 내 마음은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이기에, 내 슬픔도 기쁨도 나만이 진정 공감할 수 있다. 천천히 나의 손을 들어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내가 나의 손을 잡고, 마침내 나의 온기를 느껴본다.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스스로를 위한 예술로 어딘가 지쳐 있고, 갈곳을 몰라 방황하며 둥둥 떠있는 내 영혼을 오직 내 손으로 힘주어 끌어안는다.
그녀의 작품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감동을 느끼고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관람자도 그런 경험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 깊이 공감하고, 프리다의 마음을 전달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 나도 그런 적 있지. 아픈 적 있지. 스스로에게 위로 받은 적 있지.
나는 그림을 그리고 글도 쓴다. 이 모든 방법으로 온 힘을 다해 나를 표현해내고, 내 기쁨을 전달하고, 상처받은 나를 위로 하고, 그 과정의 여백에서 애써 당신들에게 닿아서 위안을 주고 싶다.
너덜거리는 상처투성이 내 손으로 안아드리리다.
서투르고, 투박한 나의 예술이 모두의 마음을 뭉근한 따스함으로 오래 비추어 줄 수 있기를 바라며 남루한 내 옷깃을 그대들에게 덮어줄테니, 이리 오셔서 부디 그 한기를 조금이라도 거두어 내시기를.
서툰 글을 날 것 그대로 적어봅니다.
나의 언어가 전해질까요?
어딘가에 도착해 있길 바라며
제가 만든 작고 초라한
종이배에 글을 담아 띄워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