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수영장에 갔다. 텅 빈 네모난 수영장을 보며, ‘마음껏 자유로이 수영칠거야!’라고 다짐하는 그때, 우르르 사람들이 몰려와 수영장 속으로 풍덩 들어가 버린다. 수영장은 발 담글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찬다. 이지현 작가가 그린 <수영장>의 한 장면이다. 인산인해를 이룬 수영장을 바라보니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어떻게 자유로이 헤엄친다는 말인가? 그런데 이 장면 어디서 봤더라. 내 여행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됐다.
방학을 맞이하여 시드니로 여행을 갔다. 팍팍한 1년을 보내고 쉼을 위해 떠난 여행이건만, 하필 현지인들의 휴가기간과 맞물려 엄청난 인파로 가는 곳마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맨리행 페리에서는,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리지가 한 눈에 보이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자리쟁탈전이 벌어졌다. 결국 나는 사람들 등살에 떠밀려 한쪽 가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맨리해변에 당도해서도 수영은커녕 사람구경만 잔뜩 하고 돌아왔다. 그날 일정은 쉼보단 고행에 가까웠다. 아마 소년의 기분이 이러했으리라.
그런데 소년은 우두커니 서서 사람들의 부대낌을 지켜보다가, 결심을 한 듯 물 속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 사람들은 수면 위에서 서로 부딪치며 티격태격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면, 소년은 아예 잠수를 해버리는 것이다. 시끌벅적한 소리는 서서히 잦아들고 수면 아래서 고요와 자유로움을 만끽한다. 그 속에서 자신과 닮은 한 소녀를 만난다. 둘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바다 속 세상을 누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펑~ 뚫린 듯 시원해지는 장면이다.
쉼을 찾아 떠난 여행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피로해질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소년과 같이 자유로워지기를 꿈꾼다. 여행책자의 현란한 사진과 글씨가, 쉼에서도 소비를 조장하는 자본주의의 손길이라 느껴질 때, 과감히 여행책자를 덮고 내 마음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다. 대세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으면 유행에 뒤처지는 것이라고, 고리타분한 것이라고, 속삭이더라도 내 마음의 신호를 따를 때 온 몸이 편안하게 이완되는 걸 느낀다.
소년이 물 속 깊숙이 잠수하는 시간이, 나에겐 여행지의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그림책과 만나는 시간이다. 시드니에서 가장 행복했던 마음 속 장면은, 서점 한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그림책에 흠뻑 빠졌던 순간이었다. 마음을 따스하게 울리는 그림책을 만난 날은 하루 종일 그 온기로 에너지가 충전되었다.
나는 쉼이란 소년처럼 자유롭게 나다움을 찾아가는 시간이다. 나만의 이완된 열린 시간을 찾는 것이다. 경직된 몸에서 벗어나 몸의 온갖 세포들이 열리고 주변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길 때 편안함이 찾아온다. 그 감각의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내 마음의 신호가 만들어진다. 경험 속에서 느낀 감정들이 고스란히 나의 뇌에 프로그래밍 되어 이게 쉼이라고 나에게 속삭인다. 주변의 시선과 상관없이 오로지 내 마음 속의 소리를 듣는 것, 그리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순간들을 마음껏 누리는 것. 이게 결국 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