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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eenish Dec 22. 2023

빅토리아 케이크

일탈

토스터오븐과 에어프라이기를 버리지 말 걸, 뒤늦게 후회한다. 가지고 있으면 냉동 튀김을 너무 많이 먹게 되어서 버렸는데, 오븐으로만 할 수 있는 요리가 떠오를 때마다 아쉽다.


피칸 파이를 하고 싶었다. 사 먹는 피칸 파이에 들어 있는 피칸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서 직접 하려고 구운 피칸을 사 왔으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오븐 없이 흉내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고.  


피칸 파이를 못 만들어서(?) 삐뚤어지기로 했다. 빅토리아 케이크를 해야지.

사실 빅토리아 케이크는 생긴 것부터가 내 취향이 아니라 먹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인스타에 자주 올라오는 것을 보다 보니 한 번쯤은 먹어봐야 할 것 같은 압박이 들었다. 마침 빅토리아 케이크로 유명한 빵집이 근처에 있어서 사러 갔다. 그런데 실물을 보니 투박하고 느끼한 비주얼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이걸 저 가격에? 게다가 맛만 볼 건데 너무 큼지막하기까지 해서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생각해 보니 그냥 케이크시트에 크림과 라즈베리잼을 바르면 되는 거 아닌가. 그 가게에서는 꾸덕하고 무거운 시트를 쓰는 거 같았는데, 난 가볍게 카스테라를 써야지. 첨가물 없는 유크림 100% 클로티드 크림으로. 잠깐, 이거 스콘 대신 카스테라인 것뿐 아닌가. 클로티드에 라즈베리 잼이면 맛없을 수가 없잖아.

라즈베리잼은 무설탕으로 사려다가 어차피 케이크를 먹기로 한 거, 과일 함량이 제일 높은 다보잼을 골랐다. 크림은 클로티드가 비싸서 조금 싼 마스카포네를 보다가 그 옆에 마침 할인 중인 크림치즈가 눈에 띄어 냉큼 집었다. 슈라이버 소프트 크림치즈 3,490원. 그래, 첨가물 좀 있으면 어때 어차피 삐뚤어지기로 한 거.

카스테라가 몸에 나쁘지 않기는 힘들지만, 나름 건강한 빵을 만든다는 동네 빵집에서 컵 카스테라를 샀다. 왜 이걸 굳이 시몬이라 부르는지 궁금하다.


재료:

컵 카스테라: 동네 빵집에서 샀다. 배달시킬 거면 [네니아] 카스테라를 추천한다.

다보 라즈베리 잼: 라즈베리 함량 70%. 무설탕 잼보다 색깔이 쨍하니 예뻤다.

슈라이버 소프트 크림치즈: 소프트하지는 않다. 꾸덕해서 부드러운 카스테라에 펴 바르기는 어려웠다. 그릭요거트를 쓰려다가 이번엔 제대로 삐뚤어(?) 지기로 했다.


제조:

카스테라를 반으로 갈라서 크림치즈와 잼을 올린다. 끝.

일반 케이크처럼 샌드 형식으로 하기에는 모양 잡기가 어려워서 그냥 오픈 형태로 했다.

맛있다. 이런 조합이면 맛있을만하네. 너무 맛있어서 흡족했는데, 생각해 보니 내가 크림치즈와 설탕 들어간 잼을 안 먹은지 오래라 맛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맛있는 카스테라만 고르면 실패할 수 없는 조합. 그리고 아무래도 파는 케이크보다는 덜 느끼하고 달다.

아무리 보아도 이것은 스콘인척 하는 카스테라. 사진을 보니 잼을 너무 많이 올렸나 뒤늦은 반성이 든다.

처음에는 케이크 시트에 어울리는 모양의 적당히 단단한 빵을 찾으려고 보름달빵, 카스타드 끼리크림치즈, 후레쉬베리 등을 고려했었다. 이미 크림이 들어가 있어 잼만 발라도 되고, 후레쉬베리는 아예 빅토리아 케이크 그 자체가 아닌가. 이들의 공통점은 다 내가 정말 맛없어한다는 것이다. 잼만 바른다고 맛있어질 리 없을 것 같아서 기각. 결론은 첨가물 적은 좋은 카스테라를 수제 제과점에서 사자. 빵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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