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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Jul 30. 2023

마흔 만나는 곳 100미터 전

마음 곁 가까운 곳에 있는 친구들을 만났다. 코로나 이후로 오랜만이다 싶으면 1년 만에 만나지게 되는 듯하다. 체감상 한 해가 반년 밖에 안 되는 듯 스쳐간다. 우리는 내일모레 정확히는 내년에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된다.


쉼 없이 달려온 회사생활 9년 만에 휴가 같은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친구. 부부가 함께 음악과 글로 씨름 중이라는 친구. 관절이 아파도 직업이라 매일 죽기 직전까지 운동한다는 친구.

각자 삶을 보약 달이듯이 비틀어 짜내며 살아내고 견디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내가 낳은 애들도 아닌데 대견하고 기특하다.


유학 가는 친구는 학교를 하와이다 생각하고 휴양하고 돌아왔으면 한다. 어린 외국인 학생들 사이에서 한국 언니 매운맛 보여주려는 자존심에 코피 터져가며 공부하는 애국자는 되지 말길. 인생 처음으로 대충대충, 확 그냥 막 그냥 탕자처럼 시간을 허랑방탕하게 쓰다 오길 바란다. 음악 하는 친구는 음악과의 씨름에서 안다리, 밭다리 걸 수 있는 다리는 다 걸어서 제대로 둘러매 쳤으면 좋겠다. 운동하는 친구는 100세 시대에 아껴 쓸게 한두 개가 아닌데 몸부터 아껴 썼으면 좋겠다. 나이 들어 번 돈 보다 병원비를 더 쓰게 될지 모르니 말이다.


육아와 남편 간병에 너덜너덜 한 나에게 얘들이 글을 써보라고 했다. 뭘 써야 할지 왜 써야 할지 모르겠지만, 오랜 벗들이 그러라면 이유가 있는 거겠지 하며 앉아 있다.

인스타 스토리에 이모티콘 몇 개와 단어 조합으로 마침표도 필요 없는 짧은 몇 마디 적어 올리다가 마침표가 있는 호흡의 글을 쓰려니 낯설고 숨이 찬다.

단거리 선수가 장거리 뛸 때 느끼는 통증이 이런 걸까... 하면서 통증을 붙들고 글을 쓰는 중이다라고 말하기엔 그동안 내가 읽은 것도 생각한 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야말로 빈털터리.


읽어야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해야 말하고 싶은 게 생기고 쓸 수도 있을 텐데.. 자극적인 짧은 영상들과 남들 사는 이야기 피드 구경에 중독돼서 정작 내 생각과 느낌은 영 못쓰게 된 지 오래구나를 느낀다.

여하튼, 멈춰서 다시 생각할 기회를 준 친구들에게 고맙다. 얘들 아니었으면 오늘도 깜깜한 방에서 손바닥 만한 기계에서 나오는 불빛에 뻑뻑한 안구를 쉼 없이 굴리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유학 가는 친구가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고, 음악 하는 친구가 대박을 내고, 운동하는 친구가 관절을 갈아서 근육을 키우는 동안 난 육아도 간병도 멈출 수 없다. 숨만 쉬고 있어도 흘러가는 시간인데 삶이 전쟁 같으니 시간이 총알보다 빠르다. 시간을 붙들어 둘 순 없지만 생각은 멈춰서 읽고 쓰면서 마흔을 맞이 하고 싶다.

마흔 통, 그 까이꺼 죽지 않으면 까무러 치기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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