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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Jul 26. 2023

요가스러운 글쓰기

요가는 몸으로 쓰는 글 쓰기였다.

작년 겨울, 요가를 만났다.

몸이 마른 장작 같아서 휘어지지 않아 부러지면 어쩌나 걱정이 앞선 발걸음이었다.

첫 시간 눈을 감고 명상으로 시작하는데 고요하고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마스크 안이 축축해질 정도로 눈물이 났다.

운동하러 왔는데 시작도 전에 이 무슨 궁상인가. 시작은 눈물 바람이었고 본론으로  들어가서는 내 몸뚱이와 내가 씨름하는 몸 개그 였다.

누가 세상에서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건 몸 밖에 없다고 했나. 나는 몸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리고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 장면 티브이에서 본 적이 있다. 재활훈련받던 분들.. 내 몸 거의 재활 훈련 중이었다.

몸 구석구석 일상에서 쓰지 않던 근육들을 깨우고, 잔뜩 굳어진 곳을 이완시켰다. 와.. 씨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오는 게 빠르겠다.

다시 태어나지 않고는 안될 몸뚱이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가뿐 숨을 몰아 쉴 때마다 선생님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라고 하셨다.

요가는 잘하고 못하고 가 있는 게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곳에서 , 숨 쉴 수 있는 곳에서 기다려 주고 머무르는 것이라고 하셨다.

요가를 운동이라고 하지 않고 수련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았다. 몸을 빌려 마음과 정신이 그곳에서 만나는 중이었다.

몸은 끊임없이 몸개그 중이었지만, 몸 안에 마음과 정신만큼은 감각기간의 고통을 통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고 살아온 세월을 위로하고 위로받고 있었다.

그래서 매트에 궁둥이가 닿자마자 알아채고 눈물이 났던 걸까.

내가 만난 요가의 꽃은 사바아사나. 송장자세 라고 하는 동작인데 말 그대로 송장처럼  움직이지 않고 누워 있는 동작이다.

한 시간 가까이 버티고 찢고 고통을 참으며 굴렸던 몸을 바닥에 무심하게 널어놓는다.

요가 매트가 딱 관 사이즈  같고 그 순간만큼은 이대로 내가 죽어도 좋겠다는 해방감을 느꼈다.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 누워 있는데 코 골며 주무시는 분들도 더러 있다. 죽음을 영원히 잠든다라고 표현 하기도 하는데, 그분은 정말 짧은 죽음을 경험하신 거다.

요가 얘기를 시작한 건 글쓰기가 내게 요가 같아서 그렇다. 동작도 엉터리고 버틸 힘도 없고  잔뜩 굳어 버린 몸처럼, 글이 어렵고 고통스럽다.

움직임을 통해 몸 안에서 마음이 만나듯이 글쓰기 안에서 내 생각이 마음과 만난다. 얼마동안은 또는 오랜 시간 글개그가 될지도 모르겠다.

쓸 수 있는 만큼만  쓰자. 내가 쓸 수 있는 곳에서 기다려주고 머물러 보자. 누굴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내가 내 마음과 만나는 글쓰기를 하다 보면 사바아사나 같은 해방감

을 느끼는 글을 쓰는 날이 오겠지.

그런 글쓰기를 통해서 내가 고된 시절을 살려고 애썼던 시간들이 위로를 받기를.

그래서 난 오늘도 요가를 (몸 개그를)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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