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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Aug 24. 2023

고마워요 브런치

내 이럴 줄 알았다. 글 고작 5개 끄적여 놓고 어플 받아 놓은 것도 잊을 뻔했지. 재난 알림이 아닌 알림이 브런치에서 왔다. 8월 10일에 쓴 글이 마지막이니 2주 동안 넋 놓고 있었던 것. 

이제야 내가 처음에 브런치 앱을 깔지 말지 고민했던 이유가 떠올랐다. 요즘 그 유명한 그릿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를 내가 잘 알아서였다. 마흔 가까이 살면서 수 없이 샀던 다이어리 단 한 번도 1년 치 한 권을 다 써본 적이 없었다. 1년이 너무 부담스러울 수 있었을 거다 생각하며 얼마 전에 6개월짜리 다이어리를 샀는데 한 달 쓰고 (한 달 중에서도 2주) 책장에 꽂여있다. 나라는 아이가 만들어질 때 끈기나 꾸준함 같은 DNA 자체가 만들어지다 말은 건가. 아니면 발달 과정 중 뇌세표에 문제가 생긴 걸까. 

글쓰기는 운동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써야 한다는 뼈 때리는 알림.. 글 써보라고 권해준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혼자 몇 개 끄적여 둔 이유도 내 끈기 없는 부끄러운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비밀스럽게(?) 저물어 가는 내 브런치였는데 이렇게 다정한 알림이 올 줄이야. 

나처럼 넋 놓고 있는 모두가 받은 단체 알림 일지 모르겠으나, 독거노인들이 사소한 연락에 반색하는 것처럼 반갑고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남편과 아이가 잠들고 나 혼자 까치발로 살금살금 일어나 노트북을 켤 때의 설렘을 다시 더듬으며, 알람까지 보내준 브런치에게 고마운 마음 가득가득 담아 키보드를 두드려 본다. 

이러면서도 '사람 안 변하지..' 라며 곧 같은 알람을 다시 받게 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고개를 든다. 

사실 어릴 때부터 알았던 내 단점이었는데, 그러려니 이렇게 생겨 먹은 게 나지. 하면서 체념하고 살아왔다.

학업이나 취미 생활도 끈덕지게 해 온 게 없어서, 취미나 특기 란에 채울 게 없어서 주저 주저 했던 게 나였다. 

태어남 김에 사는 게 인생이라며 살아왔었고 그게 편했었는데, 갑자기 어색하게 불편하다.

'오늘 떠오른 문장을 기록하고 한 편의 글로 완성해 보세요.'라는 말이 오늘의 작은 조각을 모아 인생이라는 퍼즐을 완성해 보세요.라고 보인다. 

내가 소홀히 하고 애정을 주지 않고 흘려보내며 나는 원래 끈기가 없어라고  넘겼던 시간들이 인생의 퍼즐 한 조각이었던 것이다. 흩어지고 날아간 퍼즐들은 다시 찾을 수 없겠지만, 참 감사하게도 매일매일의 조각이 다시 찾아오니까 내일부터는 찾아오는 퍼즐을 소중하게 받아 차곡차곡 맞춰둬야겠다!라는 지루한 다짐을 해본다. 사람들이 인생은 60부터 라고들 하던데 그러면 나는 인생 시작이 아직 20년이나 남은 거라 늦지 않았다. 너무 일찍 시작하는 거 아닌가 라며 위로해 본다. 결론은 알림을 보내준 브런치 고마워요! 내가 앞으로 잘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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