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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Sep 22. 2023

맛있게 익은 가을을 먹었다


고향 강원도에서 고모가  농사 지은신 쌀을 보내주셨다. 어제 도정해서 오늘 도착 한 쌀 맛이라니.. 말해 무얼 하나. 최근에 밥이 맛이 없어서 밥솥이 오래돼서 그런가 한번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밥솥 문제가 아니었다. 밥 맛으로 반찬을 먹었다.

쌀이 한알 한알 기름 코팅을 했나. 반짝반짝 윤이 나고 입 안에서는 혀에 감기 더니 단 맛이 났다. 물개 박수를 치면서 밥을 먹다가 갑자기 목이 콱 막히고 코가 맵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여름에 뵙고 온 고모 고모부의 휘어진 등과 마디마디가 나뭇가지 마냥 단단하게 굵어진 손이 떠올랐다. 내가 논에 모내기 한번 안 하고 퇴비 한번 안 뿌리고 한 여름날에 피(벼랑 비슷하게 생긴 잡초) 한번 뽑아 보지도 않고 이 쌀을 이렇게 먹고 있구나 생각하니 숟가락으로 밥 뜰 때 마음이 경건해지기까지 했다. 참 맛있는 가을이다. 보내주신 쌀 키로수 가격 보다 3배를 더 붙여 입금해 드렸다. 고모는 펄쩍 뛰시면서 되려 더 받았다고 돈을 돌려보내야 하냐고 하셨지만, 돈 이 있다고 어제 도정한 쌀을 오늘 맛볼 수 있는 도시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고 오히려 부족하게 드렸다고 했다.

일흔이 넘으신 노부부가 앞으로 몇 해나 더 농사를 지으시겠나 싶다. 일 년 중에 절반 가까이를 병원을 다니시고 먹는 약이 늘어나신 지가 오래됐다. 농사를 많이 줄이셨다고는 하지만 젊은 사람도 나가떨어지는 게 농사인데 그걸 노인들이 붙들고 있으니 논 밭에서  보는 눈 없을 때 쓰러지실까 봐서 사촌 언니들도 늘 걱정이다.

강원에서 내가 자랄 때 엄마 없이 할머니가 키우시다 보니 손이 못 닿는 부분이 있었을 텐데, 그 빈자리를 늘 고모, 고모부 께서 채워주셨었다. 고모네는 자식이 넷이라  둥근 밥상에 둘러앉으면 서로 어깨가 닿아 비벼졌는데, 나는 거기에 비집고 앉아서 밥 먹을 때가 집에서 할머니랑 큰아빠랑 셋이 먹는 밥 보다 맛있었다. 고모부는 밥상에서 내게 밥이 많으면 남겨도 된다는 말을 내가 갈 때마다 하셨었다. 혹 내가 배가 불러도 어려워서 꾸역꾸역 집어넣을까 봐 미리 말씀 주신다는 걸 어린 나이에도 느꼈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내 딸에게 많으면 남겨도 괜찮아. 배부르면 그만 먹어.라는 말을 자주 하는지도 모르겠다. 맘 편히 즐겁게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는 게  식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고모부 걱정 과는 다르게 나는 고모밥 먹을 때  맛이 좋아서 정말 잘 많이 먹었다. 내 키의 절반은 고모밥 덕분!

올해 비도 많이 오고 덥기도 엄청 더웠고.. 농사가 힘드셨을 텐데 그 수고와 사랑이 우리 집 밥상에 올라와 나와 내 가족의 배를 불려주셨다. 아, 참 맛나다. 살 것 같다.

대한민국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밥심으로 살지!! 충전된 힘으로 남은 2023년을 잘 매듭지어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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