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하던 가게를 정리했는데, 얼마 안 가 그 친구가 바로 옆에서 비슷한 가게를 냈다네요. 이거, 법적으로 문제 없을까요?"
음식점 하나. 둘이 함께 열고, 웃으며 시작했던 사업. 하지만 동업은 늘 그렇듯, 끝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로는 사소한 다툼이 쌓이고, 때로는 서로의 방식에 지쳐, 결국 **"이제 따로 하자"**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모든 걸 정리하고 나면, 남는 건 묘한 허탈함과 조용한 경쟁심.
그런데, 정리된 지 얼마 안 된 그 가게 바로 옆에서, 함께 했던 동업자가 비슷한 상호로 가게를 열었다면? 심지어 파는 메뉴까지 같다면?
그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
"이거, 불공평한 거 아냐?"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법적으로 막을 수는 없을까?"
경업금지의 테두리
법은 때로는 우리 감정과 엇갈리기도 한다. 아무리 억울하다고 느껴도, 법의 기준은 다를 때가 많다. 이런 갈등을 풀어낸 하나의 판결이 있다.
광주지방법원에서 내려진, 음식점 동업 해지와 관련된 이야기다.
동업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2012년, 광주 서구의 어느 골목. 두 사람, 임씨와 이씨는 함께 **‘바람난 왕족발’**이라는 이름으로 족발집을 열었다. 나름 잘 됐다. 손님도 많았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꽤 알려졌다. 하지만 함께 하는 사업이 늘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이 생겼다. 의견 충돌이 잦아졌고, 결국 두 사람은 동업을 정리하기로 한다.
2014년 2월.
임씨는 이씨에게 1억 5천만 원을 주고 가게를 넘겨받았다. 이씨는 가게를 떠났고, 임씨는 가게 상호를 **‘신(辛) 바람난 왕족발’**로 바꾸어 영업을 이어갔다.
모든 게 정리된 듯 보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 후인 2016년 3월.
이씨는 바로 근처에 새로운 가게를 열었다. 이름은 ‘바람나고 돌아온 족발·국밥’. 메뉴는 족발과 국밥. 상호부터 메뉴까지, 이전 가게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많았다.
임씨는 화가 났다.
"이건 배신이야. 이렇게 바로 옆에서 같은 메뉴를 팔면, 내 가게는 뭐가 되나?"
그리고 그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주장한 건 경업금지 의무였다.
법의 기준 – 동업 청산 vs 영업양도
임씨가 주장한 법적 근거는 상법 제41조였다.
“영업을 양도한 자는 10년 동안 종전 영업소재지와 인접한 지역에서 동종업을 하지 못한다.”
간단히 말하면, 가게를 넘긴 사람은 일정 기간 동안 근처에서 같은 업종을 하지 못한다는 규정이다. 임씨는 자신과 이씨의 관계가 영업양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난 이씨에게 돈을 주고 가게를 인수했어. 그럼 이건 영업양도고, 이씨는 근처에서 같은 가게를 낼 수 없어야 해!"
하지만 법원은 다른 판단을 내렸다.
법원의 판단 – 어디까지가 영업양도일까?
광주지법은 임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의 논리는 이랬다:
영업양도가 인정되려면, 단순히 가게를 넘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가게의 상호, 고객층, 종업원, 영업 노하우 등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조직 전체가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이씨는 단순히 투자금 반환만 받았을 뿐이었다.
임씨가 상호를 변경했고, 종업원도 새로 고용했으며, 기존의 고객층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별도로 필요했다.
결론적으로, **"이건 영업양도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상법 제41조의 경업금지 의무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임씨는 패소했다.
이 판결이 전하는 메시지
이 판결은 단순히 음식점 하나의 갈등을 넘어서, 동업 청산과 영업양도의 경계를 명확히 했다.
동업을 끝내고 나서, 서로가 어떤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셈이다.
핵심 포인트는 이렇다:
동업 청산은 단순히 투자 관계의 정리일 뿐이다.
영업양도가 되려면, 단순히 가게를 넘기는 게 아니라, 영업의 핵심 자산들이 함께 이전돼야 한다.
경업금지를 원한다면, 계약서에 명시적으로 이를 포함시켜야 한다.
감정과 법의 간극
임씨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수 있다. 수천만 원을 주고 가게를 넘겨받았는데, 바로 옆에서 비슷한 가게를 여는 동업자를 보며 허탈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은 감정보다 사실을 본다. 그리고 계약서에 쓰여 있지 않은 기대나 암묵적인 약속을 법적으로 보호해주지는 않는다.
동업을 정리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
계약서에 경업금지 조항을 넣자. 근처에서 비슷한 가게를 열지 않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한다.
영업양도의 범위를 명확히 하자. 단순히 투자금 반환인지, 가게의 운영권까지 넘기는지 구분해야 한다.
법적 상담을 받자. 동업 정리나 영업양도 계약은 분쟁의 소지가 많다.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리스크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
마무리 – 끝맺음의 기술
사업은 시작보다 마무리가 어렵다. 함께한 시간을 정리하고 각자의 길을 가야 하는 순간, 그 끝맺음이 깔끔하지 않으면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번 판결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알려준다.
“믿음만으로는 부족하다. 법은 문서 위에 있다.”
그러니, 동업을 끝낼 때는 감정에 휘둘리지 말고, 철저히 준비하자. 그래야만, 시간이 지나고도 후회 없는 이별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