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조금 여유를 찾은 것 같은 엄마에게
10.1.23 한국 가는 비행기 안에서
엄마! 여긴 호주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이야. 여기서 생각했어. 우리 가족끼리 같이 왔으면 좋았겠다고. 호주에서 내가 배운 여유를 같이 느끼면 좋았겠다고.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여행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했어. 그럴 시간과 돈이 있다는 것이 부러웠어. 우리는 1박 2일 국내여행 가기도 불가능했어. 우리의 작은 가게는 연중무휴였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난 쉬는 날 없이 일하는, 항상 지친 표정으로 집에 오는, 돈 이야기를 하며 화를 내는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며 우리 집이 정말 가난한 줄 알았어. 그런 상황에서 난 내 할 일을 열심히 해야 했어. 엄마 아빠가 조금이라도 기뻐할 수 있게. 지금은 누나와 매형에게 어느 정도 일을 맡겨서 엄마 아빠가 많이 여유로워진 것 같긴 해. 하지만 수십 년간 우리 가족 사이에 누적된 피로와 분노, 원망이 각자의 세계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고, 이제는 그런 감정의 벽 때문에 같이 낯선 곳에 가 보는 것이 두려워졌어.
아빠는 내가 경험하고자 하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았던 것 같아. 내가 친구들과 호주 여행을 가고 싶다 했을 때 아빠는 비용을 다 지원해 줄 테니 많은 것을 경험하고 오라고 했어. 그래서 난 여행 가서 최소한의 돈을 쓰면서 최대한의 경험을 하리라 다짐했어. 여행 가기 전에 모든 계획을 짜고 현지에 가서는 매일 바쁘게 돌아다녔지. 지금도 이런 방식으로 여행을 하는 편이야. 그리고 내가 삶을 운영하는 방식이기도 해. 엄마 아빠한테 보고 배운 대로. 그런데 여행을 하다 보니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은 적이 많았어.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호주에서 그런 순간이 있었어. 그래서 친구들과 잠시 떨어져서 지친 표정을 지으며 걷고 있는데 어떤 현지인이 갑자기 다가와서는 기운 내라며, 웃어보라며 하이파이브를 했어. 그 사람은 뭐든지 열심히 해야한다는 무거운 강박에 스스로를 가둔 날 가볍게 용서해줬어. 굴레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느낀 이후로 난 계속 여행을 하게 되었어. 지난한 삶의 터전에서 벗어나 있을 때 나는 구원받아. 엄마는 틈날 때마다 떠나버리는 나를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엄마! 일을 해보니까 어릴 적 엄마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서 지었던 표정이 이해가 가. 어떻게 매일 그러고 살았어?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집에 오면 너무 지치고 화가 나. 자꾸 엄마 아빠한테 짜증 내는 나를 발견해. 그러면 난 생각해. 엄마 아빠처럼 살지 말아야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나도 그렇게 살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익숙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래서 난 일과 휴식, 집중과 여유 사이의 균형을 지켜내려고 노력해. 방향성과 성취는 확실히 줄었지만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기 위해 힘내고 있어. 겉보기엔 철없고 태평해 보이겠지만 사실은 많은 내면적 갈등이 만들어 내는 균형이야. 여행이 나에게 가르쳐 준 가치야.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을 지켜낼 수 있는 방식이라고 믿고 있어. 우리가 조금 더 서로의 세계를 알고 인정하게 된다면 우리도 같이 떠날 수 있겠지?
2020.11.13
막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