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만의 마을을 만들고 싶어 하는 Y에게
13.7.14 루체른 호수에서
안녕 Y야! 얼마 전 내가 너에게 물었지. 돈이 정말 많으면 뭘 하고 싶냐고. 넌 마을과 안전한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고 했어. 정말 좋은 생각이야. 요즘 주거 환경에 대해 정말 많이 생각하게 돼. 우리가 자란 서울에는 똑같이 생긴 고층 아파트와 빌딩 건물이 즐비하고 녹지는 턱없이 부족해. 차는 너무 많고 공기는 탁하지. 쉴 곳이 없어서 다들 카페를 찾게 되고 이젠 카페마저도 자리가 없어. 통계로는 서울 인구가 줄고 있다는데 체감적으로는 예전보다 훨씬 인구가 늘어난 느낌이야. 집이라도 하나 있다면 이런 생각이 조금 덜 들까. 집값은 감당할 수 없이 올라버렸어. 지방으로 눈을 돌려도 봤어. 돈도 덜 들고 자연도 더 누릴 수 있는 곳으로. 하지만 그동안 누렸던 인프라를 버릴 수 있느냐, 전혀 모르던 곳에서 무슨 일을 하며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걱정이 앞서더군. 답답한 요즘이야.
Y야! 문득 스위스 루체른에서 느꼈던 평화가 정말 그리워졌어. 루체른 역을 나오자마자 넓은 호수가 눈에 띄었어. 너무 넓어서 사람들이 거기서 배도 타고 수영도 하더라. 호수에 홀려서 한참 물가에 앉아 있었어. 바로 앞에 하얀 백조도 떠 있고. 호숫가에서 사람들은 일광욕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소풍을 즐겼어. 짐을 다 내팽개치고 그들과 같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어. 도시는 차분했고 낮은 층의 건물들이 호수 주위를 감싸고 있었어. 유람선과 산악열차를 타고 리기산에 올라갔어. 넓은 들판에 낮은 들꽃이 흔들렸어. 소들의 워낭소리도 들렸어. 멀리 있는 봉우리에서는 만년설도 보였어. 산악열차를 타고 다시 산에서 내려오는데 열차에 탄 사람들이 요들송을 부르기 시작했어. 사람들의 얼굴은 취했는지 붉게 상기되어 있었어. 다들 아는 얼굴들인지 엄청 친해 보였어. 그러다 길을 가는데 놀이터에서 엄마들끼리 싸우고 있더라고.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 것 같던데 그 모습을 보니 사는 모습은 다 똑같구나 싶었어.
Y야! 스위스가 가지게 된 평화로운 모습에는 몇 세대를 거친 노력이 담겨 있을 거야. 사회, 역사적인 맥락도 따라줘야 가능한 일이니까. 우린 어쩌면 우리가 원하는 마을을 당장은 만들지 못할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가 꿈꾸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해. 변화는 불만, 자각, 비판에서부터 나오니까. 우리와 뜻이 같은 사람들을 모으고 자연과 편의가 어우러진 마을, 안전한 공동체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활동을 하나씩 실천해보는 거야.
2021.10.17
매일 부동산 사이트를 뒤지고 있는 너의 친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