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ZERO

회사에서

by 러키승
존재감은 '내가 나로서 채워졌을 때 느껴지는 감정'이다. (주 1)

회사에서 항상 사람들과 관계가 편하지 않았다. 그게 누구든 그랬다. 동료들의 단점을 찾고 그 단점이 나를 찌르는 칼처럼 혼자 상처받곤 했다. 상대방의 단점은 그들과 나 사이에 두꺼운 벽을 만들고 있었다.


과장님은 상사의 말 한마디에 자기 결정권을 박탈당한 채 매일 쩔쩔매는 모습을 보여줬고,

팀장님은 과장님이 모든 걸 결정해 주기를 기다리며 자기 결정권의 존재조차 모르는 듯 보였고,

동료들은 어떻게 해서든 편하고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가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나는 그 안에서 그들과 똑같은 행동을 반복했지만 속으로 그들을 무시했다. 결국 내가 나 자신을 무시한 것이다.


이렇게 회사의 대부분 사람들이 내 눈에는 이상하게 보였고, 가까이하면 안 될 것 같은 엄청난 오만 섞인 직감으로 그들을 멀리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혼자 다니는 것이 편했다. 그런데 혼자 있으면 뒤에서 날 욕하는 사람이 생긴다. 나는 더욱더 그들과 멀어진다. 매일 들리지 않는 총성으로 가득한 전쟁터에서 피로한 나날들이 계속됐다. 우두커니 총을 들고 경계태세에 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 내가 보였다. 나의 정신은 온통 타인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과장님, 팀장님, 동료들에 의해 나의 마음과 정신과 육체는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했다.



나보다 나이 많은 후배 여직원이 들어왔다.

그녀는 은근히 나를 무시했다. 내가 없을 때만 따로 팀원들을 불러서 회식을 하자고 한다던가, 내가 하지 말라고 당부했던 일을 보란 듯이 한다던가. 여러모로 골치 아픈 그녀였다. 문제는 그녀와 나는 대직관계에 있었다는 것이다. 한 번은 그녀가 2주 동안 해외여행을 간다며 휴가를 냈다. 휴가기간 동안 그녀의 업무는 내 차지였고, 나는 묵묵히 일처리를 했다. 2주 후 그녀는 나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내가 처리해 놓은 대직 일처리가 맘에 들지 않았는지 불만을 얘기했다. 인사치레로 사탕 한 개라도 사 올 줄 알았던 내가 바보였다는 걸 깨달은 그 순간 분노가 올라왔다. 사탕은 분노의 트리거가 되었다. 그날 나는 마음에서 그녀를 지워버렸고 그녀의 모든 것을 차단했다. 바로 옆에 앉아 있는 그녀였지만 철저히 무시해 버렸다. 인사도, 어떠한 말도 섞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은 참지 못하겠다는 무언의 신호였다. 그렇게 1년이 넘도록 그녀와 나는 인사 한번 하지 않았다.


내마음도 괴로웠다. 이일을 계기로 나는 타인이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인문학이 그중 하나였고 책을 보며 사람과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재밌었다. 나랑 잘 맞았다.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존재감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동안 나는 나의 존재를 각종 쓰레기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생활이 힘들 수밖에... 내안에 있던 악취와 오물이 진동을 하는 그것들은 모두 버리고 새로운 걸로 채워야 살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비워진 그 공간을 내가 좋아하고 내가 필요한 것으로 채워 넣었다. 그것은 바로 '나'였다. 나의 꿈, 나의 목표, 나의 취향, 나의 관심... 가득했지만 가벼웠다. 가볍고 재밌으니 나에게 집중하는 법도 저절로 터득이 됐다. 분노의 그녀는 나를 가르치러 온 스승이라는 걸 알았다.


나로 채우다


존재감은 다른 사람에게 '나 여기 있어요!'라고 알리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나 여기 있어요!'라고 알리면 그만인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을 나로 채우면 타인은 저절로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뒤에서 욕할 일도 없으며 미워할 일도 없어지게 된다. 그것이- '자기 자신의 실재를 믿는 마음' -바로 존재감인 것이다. (주 2)







주 1) 관계의 발작과 경련, 김주원, 건율원

주 2) 관계의 발작과 경련, 김주원, 건율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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