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의 거리감이 무너진 날

by 무심

그녀는 학교 후배이자 직장 동료였다. 적당히 도도하고 늘 사람들 틈에서 자신만만했던 H. 우리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라는 안전한 거리감을 유지해 왔다.


내가 척추 전이 판정을 받고 항암을 시작했을 때도, 그녀가 가끔 건네는 안부 전화는 그 거리만큼이나 의례적인 것이었다.
“몸은 좀 어때요?”
“경과는 괜찮아요?”


나 역시 내 앞의 생이 어찌 될지 몰라, 그 물음에 길게 답할 여력이 없던 시기였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다시 전화가 왔다. 항암의 독성으로 하루하루가 버거운 나에게, 그녀는 평소와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언니, 나 췌장암이래. 한번 만나고 싶어.”


​그 짧은 말이 우리 사이의 사회적 거리를 단숨에 무너뜨렸다.

예쁘고 당당하던 후배 H는 사라지고, 절벽 끝에 서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한 여자가 거기 있었다.


​우리는 건강할 때 가끔 가던 추어탕집에서 마주 앉았다.

췌장암. 예후가 좋지 않다는 그 세 글자가 뚝배기에서 올라오는 김처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다.

나 역시 전이암 환자로 위태로운 처지였지만, 내 앞에 앉은 그녀의 절망은 또 다른 종류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붉어진 눈시울로 숟가락을 들었다. 누가 더 아프고 더 위험한지를 따지는 일은 의미 없었다.

그저 죽음이라는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 둘을 동시에 덮치고 있다는 사실만이 선명했다. ​


대개 암 진단을 받으면 지인들은 서서히 멀어진다. 병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혼이던 H는 부모에게 병을 숨긴 채, 혼자 견디고 있었다. 낯선 세상에 덩그러니 던져진 그녀의 고독이 내 살갗에 닿았다.


나 역시 부종으로 퉁퉁 부은 몸을 이끌고 투병 중이었지만, 그녀의 고립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


“나 있는 요양원으로 와. 서로 의지가 될 거야.”


그것이 서로에게 어떤 상처를 남길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벼랑 끝에서 만난 두 여자의 동행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