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중계 위, 서로 다른 절망의 빛깔

by 무심


그래서 언니는,
지금의 나랑 바꿀 수 있어?”


우리의 동행은 두 달을 채우지 못했다.

암의 양상이 달랐듯, 고통을 견디는 방식도 달랐다.


항암 부작용으로 다리가 퉁퉁 부어오른 나는 1층에 머물렀고,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던 H는 볕이 잘 드는 2층을 택했다. ​


요양원의 아침은 식당 입구에 놓인 체중계에 오르는 일로 시작되었다.

H는 늘 체중계 앞에서 짧은 심호흡을 했다. 단 100그램이라도 늘어난 날엔 얼굴에 생기가 돌았고, 숫자가 뒷걸음질 친 날엔 젓가락질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그녀와 달리, 나는 부종 때문에 불어나는 숫자에 예민했다.


체중이 늘어날수록 병증의 악화를 걱정하는 사람과, 체중이 감소할수록 생명의 소멸을 직감하는 사람.

체중계의 향방에 따라 식탁 앞 분위기도 묘하게 껄끄러워지곤 했다.

같은 체중계 위에 섰지만, 우리가 느끼는 공포의 방향은 그렇게나 달랐다.​


저녁이면 H는 내 방으로 내려와 TV를 봤다. 그녀는 주로 먹방 채널을 고정했다.

화면 속 출연자가 입안 가득 음식을 넣고 우물거릴 때면, 그녀의 눈은 기묘할 정도로 반짝였다.

나는 그 모습이 생소해 화면보다는 그 옆얼굴을 흘깃거렸다.

그저 잘 먹는 모습이 부러웠던 것일까, 아니면 사라져 가는 생기 대신 타인의 활기라도 눈에 담으려는 본능이었을까.


나는 사실 먹방을 좋아하지 않았다.​

건강한 소란스러움이 버거웠던 건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유난히 가라앉은 그녀에게 위로가 될까 싶어 농담처럼 옛 기억꺼냈다.

“난 네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어. 가까이 가기 어려울 만큼 자신만만하고 당당했어. 참 부러웠지.”

H가 차갑게 되물었다.

“그래서 언니는, 지금의 나랑 바꿀 수 있어?”​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차갑게 얼어붙었다.

나는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 찰나의 침묵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그녀의 눈에 비친 나는 자신보다 운이 좋은 환자일 뿐이라는 것을. 의지할 남편과 자식이 있고, 삶 쪽에 조금 더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


그녀는 환우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의 무력함에서 자신의 미래를 보았는지, 철저히 거리를 두며 자신을 가두었다.

내가 다른 환우들과 길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유독 한 사람 앞에서는 무너졌다.

난소암 3기임에도 늘 웃음을 몰고 다니던 막내뻘 환우였다. 그 아이의 생기 앞에서는 H도 내가 알던 평소의 꾸밈없는 미소를 보여주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몸속에 도사린 공포를 잠시 잊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끔 웃기도 했지만, 돌아서면 그녀를 짓누르는 공포가 훨씬 더 커 보였다.


명상 시간의 침묵마저 참지 못하고 겉돌던 그녀는, 결국 두 달 만에 짐을 쌌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산속이 아니라, 차라리 번잡한 세상에서 버텨보겠다고 했다.

온기가 사라진 그녀의 2층 방 창가에 서서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는 산속의 고요함보다, 자신을 감춰줄 세상의 소음이 더 간절했던 것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