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가면을 쓰는 시간

by 무심


​아픈 사람의 눈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의 눈으로 보고 싶어


시설의 안온함보다 온전한 자신의 공간을 그리워했던 H는 요양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온 세상은 생각보다 냉정했다.

형제들은 돌봄을 외면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삶이 고단한 생활인이었다.

홀로 남겨진 집안에 TV 소리만 흩어져 남았고, 그녀의 세상은 현관문 안쪽으로 바짝 좁아졌다.

안부를 묻던 지인들의 전화마저 뜸해지자, 그녀는 문밖의 발자국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며 요양원에서보다 더 지독한 고독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녀를 진짜 숨 막히게 한 것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가면의 시간'이었다.

부모님을 뵈러 갈 때면, 그녀는 거울 앞에서 가장 정교한 가면을 썼다.

항암으로 빠져버린 머리카락 대신 가발을 깊게 눌러썼다.

평생을 고수했던 긴 머리 대신 "요즘 유행이라 잘라봤어"라는 핑계가 통할 있는 짧은 가발이었다.


부모님 앞에선 암 환자가 아니라 여전히 바쁜 '팀장님'이어야 했다.

"안색이 왜 그러니?" 하는 물음에는 그저 "요즘 새로운 사업을 맡아서 피곤하네" 라며 힘든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외모가 초췌해질수록 그녀는 더 바쁜 척 안간힘을 썼다. 가발의 경계선이 드러날까 봐 제대로 몸을 누이지도 못했다. 팔십 대 노부모님은 끝내 딸의 투병도, 휴직 알지 못했다.


나는 서울에 올 때마다 짬을 내어 그녀를 만났고, 컨디션이 괜찮은 날이면, 집 근처 둘레길을 함께 걷곤 했다.

그 무렵 그녀는 담당의사의 모호한 답변들과 별 진전 없는 치료에 지쳐 가고 있었다. ​


유난히 시야가 맑고 청명했던 어느 날, 푸르다 못해 시린 풍경이 마치 그녀를 비웃는 것 같았을까.

전망대에 올라 탁 트인 경관을 바라보던 그녀가 불현듯 주저앉아 아이처럼 목놓아 울어버렸다. ​

"언니, 나는 이 풍경을 아픈 사람의 눈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의 눈으로 보고 싶어. 건강했던 예전의 내가 아니면 다 아무 의미 없어."​


그녀에게 투병은 '빼앗긴 일상을 되찾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내일의 희망을 붙잡으며 생의 한복판에서 안간힘을 쓰던 그녀가 어느 날, 내게 조심스럽게 제안을 건넸다.


"언니, 우리 제주도 갈래?"


가장 사랑했던 가족들과 하고 싶었지만 차마 용기 내지 못했던 여행.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가장 찬란하고 서글픈 외출의 동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