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jae
불의 죄
—Beethoven, Piano sonata No.14
유현숙
오디오에 불을 지핍니다
진공관에 불빛이 차오르고 차오른 불빛이 마루에 쌓인 수북하던
어둠을 걷어냅니다
안마당도 삼나무 가지도 지난봄에는 무르고 연했지요
마룻바닥에 엎드린 내 등짝에, 뺨을 묻은 손등에
달빛은 참 푸른 음악입니다
알프레드 브렌델이 연주한 C#단조의 셋잇단음표들입니다
가고 없는 사람의 기록은 공간이기도 그 공간을 질러가는 불이기도 했습니까
지금도 곁자리를 비워 둡니다
그 불을 코카서스 산정에서 훔쳐 올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당신과 나란히 목침을 괴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달빛 소나타로 물들고 싶습니다
이생의 매일을 독수리 대신 당신에게 내장이 뜯긴다해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회향나무 잔가지가 붉게 타오릅니다
이곳은 프로메테우스가 사랑한 인간의 마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