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하다』_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최성은 옮김/ 2016, 문학과 지성사-2021년 7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 폴란드의 쿠르니크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까지 살다가 1931년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드로 이주하여 작고할 때까지 거주함.
『끝과 시작』의 시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쉼보르스카의 마지막 전언’,
‘시단의 모차르트’
이 몇 줄만으로도 『충분하다』를, 쉼보르스카를 읽고 싶은 유혹과 더불어 첫 장을 넘기며 설레기까지 했다.
2012년 2월 1일에 타계하고 2012년 4월 20일에 유고시집으로 『충분하다』가 발간되었다.
『충분하다』,
제목이 던지는 이 말은 깊은 울림이 있다. 86세의 시인이 작고 전, 다음 시집의 제목으로 정했다한다. 시인은 생전의 자기 자신에게, 혹은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위무와 확신의 말일까? ‘충분하다’는 이 한 마디가 나는 메시아의 메시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없는 욕구를 향하여 탐색하며 만족할 줄 모르는 현대인에게, 세상의 물질문명에게 던지는 일침 아닐까. 시 편편이 삶(인간)의 본질이라든가 패러독스가 명징하게 내재되어 있어 서정성이 깔린 실존에 대한 탐구로 읽힌다.
시 「나의 시에게」는 좋은 시의 경우란 ‘읽히고, 논평되고, 기억되는 것’에서 ‘그냥 읽히는 것’이 ‘그다음으로 좋은 시의 경우’이다가 세 번째로 좋은 시의 경우란 완성된 시를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이라고 한다. 버려지는 것에 네 번째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미처 쓰이지 않은 자취, 뭐라고 웅얼거리는 화자의 남겨진 어조…… 결국 가장 만족하는 좋은 시란 없다는 걸까?
시 「지도」는 32행의 대체로 긴 시편으로 시에는 쉼보르스카라는 시인이 있었고, 철학자가 있었다. ‘지도’라는 평면화된 세계전지를 펼쳐놓고 시인은 신들의 세계에 사는 제왕(제우스)이 된 듯하다. 이 또한 시가 주는 매력 아닐까. 아니, 정곡을 찌르는 명징한 ‘알림창’ 같다고나 할까.
우주라는 광대함은 그 속에 떠도는 미세한 ‘나’라는 개체가 ‘손톱 끝’이나 검지의 마디 끝으로 평원이든 골짜기든 고지대든 산맥이든 해안이든 닿기도, 어루만지기도 할 수 있으며, 어떤 염려도 없이 우리가 두려워하는 지구의 극점을 만나기도 하고 밀림을 헤매일 수도 있으며 숲길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지도 위에서는 그 평이한 사물이나 그에 대한 관점을 시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시간과 공간이 확장되고 있는 존재의 본질에 대하여 말 할 때, 잠시 마음이 평안해졌다.
시 「지도」는 시인이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작품이라 한다. 86세의 시인이 지도를 펼쳐놓고 평면화된 우주를, 점점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누구나 가야할 곳은 이 우주의 어느 지점일까? 시인은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돌아가야 한다” (미완성 시와 관련된 메모 중에서, 편집후기)-사후 노트의 메모에 남겨진 글귀. 86세의 시인은 死後에 대하여 생각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워하려면 멀리 있어야 하므로”. 이 한 줄은 줄이 그어져 삭제되었다하지만, 누구나 그리움이란 멀리 있어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시나 노래에서 ‘보고 있어도 보고 싶다’고들 하지만…… 보고 싶은 것과 그리움이란 엄연히 그 결이 다르다고 본다.
시인은 ‘떠남’을 염두에 두고 허공의 푸른 별을 바라보듯 ‘그리움’을, ‘지도’를 실존적으로 탐색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