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imjae
꽃그늘
숲에서 생채 냄새가 난다
오동나무는 뿌리를 뻗어 땅속 물을 퍼 올리고
허공에다 보랏빛 꽃들을 내다 건다, 그렇게
자서自序를 쓴다
오동나무 아래에 보랏빛 그늘이 깔리듯
그 그늘 아래로 물소리 흘러가듯
심심한 소금쟁이가 물바닥에다 발자국을 찍듯
그때 내가 발자국 찍히는 수면이 되듯
내 어깨와 손등과 발등에 묻은 이슬을 털어서 길게길게 꽃피는
내력을 쓴다
오늘은 관음사 안마당에 햇살이 일찍 닿고
나는 조용해져서 두 손을 포개고 앉아
오동꽃빛으로 물드는 풍경을 바라본다
어떤 사람이
이 풍경 한 책冊을 얻기 위하여 아침부터 말갛게 눈을 씻는지
시작노트
2024. 8. 22.
그땐 그랬다. 퇴근하자마자 밥솥에 밥을 앉히고
생수병 하나를 베낭에 넣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관음사엘 올랐다.
아카시아 숲을 지나 구불텅 오르막 길을 올라 절집에 도착하면
절 마당에는 어둠이 깔리고
나는 두 손을 모아 탑을 돌았다.
한 번은 내 아이들을 위하여
한 번은 내 꿈을 위하여
한 번은 내 부모를 위하여
한 번은 죽은 이를 위하여
한 번은 지상의 아픈 이들을 위하여
탑돌이를 마치면 수각에서 흐르는 샘물을 한 병 받고
절집 처마 아래 있는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 천천히 마셨다.
기와 담장 아래 서서
산 아래 세상의 불빛들을 바라보며
지금 서 있는 이곳이 천상이라 불렀다. 그땐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