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 교열의 터널

출간 전 원고와 함께 씨름하는 마지막 관문

by 위혜정

내 이름이 찍힌 책 한 권을 품에 안는 것은 분명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장밋빛 영광의 시간 앞에 눈 빠지게 반복되는 인내의 과정이 수반된다. 졸업의 영광을 누리기 위해 논문이라는 거대 암흑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것처럼.


책출간과 논문은 수고와 땀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확연히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논문의 경우, 책장 구석에 짱박아 두고 다시 꺼내보는 일이 없지만 출간된 책은 옆에 끼고 들춰보기도, 다른 누군가에게 읽히기도 한다. 나의 논문이 타자에게 인용되고 있는지의 여부는 연구자가 본업이 아닌 이상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나에게 논문은 개인적인 삶 그다지 밀접성이 보인다. 하지만, 책은 다르다. 주변의 반응, 스스로에 대한 다짐과 의식, SNS에서의 서평, 온라인 오프라인 서점 어딘가에 꽂혀있는 책의 존재감, 혹은 판매지수의 변동과 인세 입금 등 일상 가운데 높은 밀착감으로 파고든다. 출간 후의 결실에 대한 체감도 깊다. 게다가 책은 팔리지 않으면 않은 데로 팔리면 팔리는 데로 유익을 준다. 판매부수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 성장이라는 대가를 받으며, 운 좋으면 금전적인 보상과 미래의 가능성까지 따라온다. 더 나은 내가 되어가는 과정인 셈이다. 그런데 이런 장밋빛 책출간이 마냥 걷기 좋은 꽃길로만 이루어진 여정일까?


공들여 작업하고 난 후 토 나올 것 같아 졸업 후엔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 논문이라던데, 출간 역시 한 권의 책이 나오 과정에서 지루하고 더디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과정 있다. 바로 교정 교열 단계이다. 책이 세상의 빛을 보기 직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단계이기에 우회하여 돌아갈 수도 없 노릇이다.


이 작업을 수월하게 넘어가기 위해 대신해 줄 인력을 아웃소싱하는 출판사들도 있다. 가성비 차원에서 출판사 편집부가 모든 것을 처리하기보다 책정되어 있는 가격에 따라 전문 인력들에게 외주를 주는 것이다. 출판 시장 생태계의 한 부분으로 공공연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편집장님과 함께 교정 교열에 직접 참여해 왔다. 우선, 교정 교열, 그리고 자연스레 함께 따라오는 윤문이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부터 살펴보자.


* 교정(Proofreading): 맞춤법, 문법, 오탈자, 오식, 비문 등을 찾아 수정하는 것

* 교열(Editing): 문서나 원고 가운데 잘못된 내용, 사실 여부를 확인하여 바로잡아 고치고 검열하는 것

* 윤문(Rewriting): 글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도록 어휘, 내용 등을 매끄럽게 다듬는 것


쉽게 말해 교정은 글의 기술적인 외관을 점검하는 것이고, 교열과 윤문은 글의 질적인 내관을 다듬는 작업이다. 그렇다면 교열과 윤문의 차이는 무엇일까? 한국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문법 내용 올바른 문장을 만드는 것이 교열이라면 이를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매끄럽게 윤색하는 것 윤문라고 생각하면 된다. 외국어를 습득하는 과정에서 문법 혹은 내용적으로는 완벽하더라도 원어민에게 이상하게 들리는 경우가 있다. 이때 문장을 어색하지 않게, 더 나아가 고급지게 다듬는 것이 바로 윤문이다.


최종원고를 교정 교열하는 횟수는 최소 3회이다. 편집장님께서 원고를 보고 넘겨주시면 저자가 살핀 후 다시 편집장님께 보내는 것이 1교다(1회 교정 교열). 이 과정을 왔다 갔다 3회 반복하여 3교에 이를 때쯤이면 빼낼 것, 더할 것, 수정할 것 등이 거름망을 통과하듯 점차 줄어든다. 신기하게도 "완벽해!"라고 꼼꼼히 보고 넘긴 원고에서도 화수분처럼 수정 사항들이 계속 나온다. 시험 문제를 출제한 이후, 오류가 없는지 끊임없이 검토하는 과정 유사하다. 눈 빠지게 보고 또 봐도 고칠 부분이 또 나온다. 그런 면에서 교정 교열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의 품이 다. 할 수만 있다면 건너뛰고 싶은 단계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여러 측면에서 이점이음을 알기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꾸역꾸역 해나간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해내는 것이 일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기에. 출판의 마지막 단계, 최절정의 고비가 될 수 있는 교정 교열을 덜 힘들게 소화시킬 수 있는 유익이란 것이 무엇일까?

첫째, 한국어 지식이 늘어나는 지적 채움이다. 교정의 기본은 맞춤법이다. 문법이 자주 바뀌다 보니 국어 교사들도 매해 공부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이 한국어이다. 하물며 전공자도 아니라면 구멍이 송송 뚫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를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면서 조금이라도 알쏭달쏭한 부분은 사전을 찾게 된다. 자연스레 단어의 쓰임이나 용법을 익혀가고 문법 지식이 조금씩 확장되어 가는 느낌이다. 띄어쓰기, 낱말의 받침, 주어와 서술어의 일치, 부사의 호응 등도 한번 더 확인하게 된다. 문법에서 이탈될 확률을 낮추기 위해 문장을 자르 간결 표현에 신경 쓰는 것도 중요하다. 의미가 중언부언 반복되 않도록 양과 무게 덜어낸다.


둘째, 교열과 윤문의 과정에서 같은 문장을 다양한 뉘앙스로 담아내는 실험을 해볼 수 있다. 동일한 문장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어차피 교열과 윤문 작업에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할라치면 끝도 없는 것이 교열과 윤문이다. 뉘앙스 차이를 조절하며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오롯이 작가의 몫이다. 글 센스라고나 할까. 편집장님들은 작가 배려 차원에서 수정 원고를 백 프로 수용해 주신다. 글의 결정권이 온전히 내 손안에 있는 상황에서 이리저리 문장을 굴리는 작업은 묘한 희열감을 준다.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며 미묘한 차이를 불러일으키는 시도들을 통해 문장 센스를 길러 나간다.


셋째, 완벽한 완성품으로 변모되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기쁨이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여전히 출간 후에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들이 발견다. 그럼에도 퇴고 작업 후, 1교, 2교, 3교를 거칠 때마다 빨간 수정 표시가 점차 줄어들면서 산모가 아기를 만나듯 뱃속에 품은 아이를 만나게 될 기대와 설렘이 커진다. 3교를 완료하고 나면 정서적 충만감이 정점에 닿는다. '드디어 끝났다!' 책 출간의 전 과정을 통과해 낸 성취감 내지는 과업에 대한 의무감에서 풀려난 자유함이다. 물론, 편집장님은 교정지(내지의 디자인까지 완료된 원고 출력본)를 몇 차례 더 검토한 후에야 원고를 마감하시겠지만. 저자의 입장에게는 3교 종료 시점이 손에서 원고를 떨구어 내는 후련함 선사한다. 지난한 과정에 마침표를 찍고 이제 세상에 나올 내 자식을 기다리는 어미의 마음을 온전히 즐길 시간만 남은 것이다.


두 권의 책에 대한 2교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게 생겼다. 서로 다른 출판사의 출간 스케줄에 따라 각 책의 출간 시기는 차이가 날 예정이다. 그런데도 한꺼번에 일이 몰려들어 과업의 무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2교이지만 여전히 빨간펜의 놀림은 분주하며 가야 할 길이 멀고도 멀다. 눈이 빠질 것 같이 태블릿과 노트북을 응시해야 한다. 3교가 되면 더 나아지려나... 매번 반복되는 끝없는 과정이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희망을 붙잡으며 세 가지 이점을 되뇐다. 교정 교열 지나면 만나게 될 또 다른 책들을 떠올리며 행복하게 마무리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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