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마다 병원 검진을 받는다. 난치성 질병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발병에 대한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 언제 기지개를 켤지 알 수 없는 병을 숨죽여 감시하듯 기다려야 한다. 시간을 죽이고 지켜보는 모호함과 답답함이 따른다. 진단명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비결핵항상균 폐질환이다. 나는 왜 이런 병에 걸렸을까? 아무리 고민해 보지만 답은 없다. 더듬어 보니 엄마의 숨겨왔던 병력이 짚힌다.
"나는 60대에 발현된 건데 너는 벌써부터니? 우리 딸 어쩌냐..."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탄식. 동일한 질병으로 당신 역시 6개월에 한 번씩 추적 관찰 중이다. 돌아가시기 전, 아빠가 사경을 헤매었던 것도 폐가 원인이었다. 그렇구나. 내 병의 근원은 빼도 박도 못하는 유전이었구나.
삼성 병원의 좋은 점은 잘 갖추어진 셔틀 시스템이다. 수서역 1번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5~10분 내에 병원행 셔틀버스가 도착한다. 수차례의 병원 방문으로 느끼는 것은 '세상에 아픈 사람이 참 많구나!'이다. 셔틀버스가 태워 나르는 환자와 가족들의 수는 당최 줄지 않는다. 매번 꽉 차서 앉을자리 없이 서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 많은 인원을 하루에도 수없이 실어 나르는 버스의 순환율을 계산하다 보면 금세 병원 입구에 다다른다.
정문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정해진 루틴을 따른다. 진료 전, QR출입증 코드를 받고 문진표를 작성한 후 배출한 객담을 제출하고 엑스레이를 찍는다. 찍은 엑스레이와 이전의 것을 비교하며 진료를 받는다. 진료 후, 새로운 객담통을 받고 수납 후 바로 보험회사에 보험료 청구 서류를 보낸다.처음에는 헤맸지만 이제 반복으로 자연 세팅되었다. 4개월 전 균이 배양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계속 배양되지 않았길 바라며 진료실로 들어선다.
"균이 배양되지 않았어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가래를 제대로 뱉지 않았거나, 아직 병변이 미미하여 배출되지 않았거나, 정말 없거나입니다. 이전 사진과 비교해서 폐 상태는 괜찮고 관리 잘하시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병에 대한 인식입니다. 조금 지루하더라도 계속 괜찮은지 3년 간 추적 관찰하는 것이고요. 그때까지 무탈하면 쭉 건강하게 관리하며 사시면 되고요. 3년 후에 갑자기 안 좋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경우는 치료를 시작하면 됩니다."
당분간은 오늘의 진료 결과에 감사할 수 있겠다. 하지만 언제든 터져버릴 수 있는 폭탄을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관지 확장증'이라는 병명도 같이 덧붙여진다. 찾아보니 역시나 완치는 불가다. 3년 간 4개월에 한 번씩 총 12번의 병원행이 기본으로 깔린다. 간간이 기침이 날 때면 '나빠지는 징후일까?'의 불안이 일기도 한다. 가능하다면 육체에 깊이 박힌 가시를 뽑아버리고 싶다. 왜 멀쩡하던 폐부에 경고등이 뜬 걸까? 이 질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원망보다는 단념과 인정이다. 어쨌건 기침이 줄고 자가 호흡을 여전히 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 겸허해진다. 아무것도 아닌 숨쉬기가 절실한 무엇이 되어버린 지금,그저 지나쳤던 사도바울의 고백이 마음으로 굴러 들어온다.
너무 자만하게 하지 않게 하려고 육체에 가시를 주셨으니 이것을 떠나게 하려고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장)
나의 자만과 나의 약함이 다루어지고, 은혜와 기쁨이 채워지며, 온전함과 능력으로 세워지는 큰 뜻, 그 안에 가시가 박혔다. 가시의 존재는 보통 성가신 게 아니지만 그로 인해생의 질감은 분명 달라진다. 더 이상 매끄럽기를 바라지 않는다.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켜지는 건강,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맡겨지는 인생이라는 감각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호흡이 나를 밀어내지 않는 한, 그 숨결이 균질하게 지속되면 좋겠다. 날숨과 들숨에 잔잔한 생명력이 실려서 나도, 너도 살아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