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오지 말라는 그 말

남편, 고마워!

by 위혜정
이제, 우리 다시 보지 맙시다.



눈물 콧물 흘리며 정주행 한 디즈니 <조명가게>의 주인아저씨가 건네는 작별인사다. 일반적인 문맥에서는 냉담하기 짝이 없는 서늘함이 실려있다. 하지만 극의 상황에선 따스함으로 꽉 들어 찬 말이다. 사후 세계에서 자신의 빛을 찾아야만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격려의 말이므로. 조명가게에서 발견한 빛을 손에 쥐고 죽음이 아닌 삶으로 다시 복귀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온기 있는 응원사이기에. 죽음에서 삶으로 넘어가는 문맥이 주는 말의 온도차다.


- 다시는 이 세계로 와서 떠돌지 마세요.

- 원래 속해 있던 곳으로 안전하게 돌아가세요.

- 다시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세요.




작년 1월, 난생처음 CT를 찍어야 한다는 말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의사 선생님께서 첫 진료의 결정을 완전히 뒤집으신 터라 더욱 그랬다.


(첫 진료)

- 방사선에 노출되는데 굳이 CT를 찍을 필요는 없어요.


(두 번째 진료)

-상태를 자세히 들여다보려면 CT를 찍어야겠네요.




난치성 폐질환. 180도 뒤집힌 상황이 되었다. 안도에서 걱정으로, 당혹감이 상당했다. '왜?', '어쩌다가?', '이제, 어쩌나?' 등의 물음표를 뭉개버릴 만큼 마음에 덮친 먹구름의 무게에 짓눌렸다.



- 어떻게 하면 좋아지나요? 면역력을 높이면 될까요?


- 면역과는 상관없습니다.




'이렇게 치료해 봅시다.'라는 명쾌한 답변이나 방향성 없이, 더 악화되는지를 추적 관찰하는 것이 고작이다. 치료제가 없어서 고치기 힘들고, 증상이 심해지면 독한 약물에 의존하여 회복을 기다리는, 기약 없는 싸움이다. 이유 없이 기침이 날 때마다 마음이 쪼그라든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뚜렷한 6하 원칙으로 원인이나 해결책, 둘 중 하나의 윤곽도 잡을 수 없는 무력감에 젖어든다. 운명을 받아들이는 처연함을 뚫고 가상의 시나리오가 고개를 들 때마다 마음을 헤집는다. 그러면 이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걸까.




3개월에 한 번,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갈 때면 의식을 치르듯 객담액을 제출하고 엑스레이를 찍는다. 이번엔 무슨 말씀을 하실까 긴장하며 전문가의 소견 앞에 납작 엎드린다. 걷히지 않는 안갯속을 걷는 것이 수 있는 최선이다.



- 아직 균 배양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객담을 배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 두고 봅시다.


- 현재 폐상태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입술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환자들을 얼마나 크게 울고 웃게 하는 지를 교수님은 아실까. 어떤 것도 특정되지 않은 모호함을 가르며 홀로 1년간 병원을 출입했다. 한 획이라도 뚜렷하게 실체가 드러나는 무언가가 있길 바라며 남편은 늘 걱정스레 옆을 지킨다. 눈앞에 떨어진 바쁜 과업 처리로 점차 담담해져 가는 나와 다르게 그의 의문과 염려는 짙어진다.


- 내가 따라갈까?


- 교수님께 내가 잘 물어봐야 하는데...

거동이 불편한 것도, 지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닌지라 매번 홀로 병원행을 고집했다. 드디어 한 해를 넘기는 시점, 교수님께서 경과 확인 차 CT 재촬영을 요구하신다. 1년 만에 하는 두 번째 CT 촬영. 괜스레 겁먹었던 첫 번째에 비해 담대함이 쌓였다. 2025년, 교육과정의 격변으로 병원 진료가 더 어려워진 수업 스케줄 앞에 머리가 복잡하다. 아이 하교 라이딩을 하려면 오전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블록 타임으로 수업 교환 자체가 힘든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교수님을 대면한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처방이 떨어진다.



- 이제 더 이상 오지 마세요.


- 네? 왜... 요?


- 폐상태가 많이 좋아졌어요. 염증도 많이 줄어든 것 같고. 균배양은 아직 안되었지만요.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니 나중에 증상이 나타나면 방문하세요. 지금처럼 관리 잘하시고요.



처음에는 추적 관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진 것인지, 의사 선생님이 나를 포기하신 것인지, 올 수 있는데 왜 오지 마라시는 것인지 마음에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물이 핑 돈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당분간은 난치성 폐병이라는 족쇄가 헐겁게나마 풀어진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일시적인 자유가 허락되는 것이다. 1년 전에 뒤집혔던 진단 결과처럼 지난 1년의 무엇이 손바닥 뒤집듯 상황을 바꿔 놓은 것이다. 어떻게 그곳에서 이곳으로 넘어온 걸까. 죽음에서 삶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건너온 것처럼.





남편은 한 해 동안 육아휴직을 했다. 나는 '육아'를 강조했지만 그는 '휴직'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꾸준히 그의 시선을, 나는 끝없이 나의 시각을 고집하며 한 해를 넘었다. 좁혀지지 않는 관점의 차이로 인해 많이도 투닥였다. 나와 다르게 남편은 무엇을 보았을까.



난치성 폐질환에 대한 어떠한 해결점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면역력 강화'라는 자체 플랜으로 그는 성실하게 내 옆을 지켰다. 아내의 건강을 위해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고, 운동으로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새벽 PT를 자처했다. 근력 운동은 기본이고 폐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러닝도 추가하여 함께 뛰었다. 운동이 끝나면 온몸에 오일과 로션을 발라주고, 아침마다 디톡스 주스를 갈아 주었다. 아들의 등하교는 물론이고, 아내를 위한 출퇴근 라이딩 서비스까지, 자발적인 운전기사가 되어 주었다. 저녁이면 가습기를 채워 숨쉬기 편한 환경을 조성해 주었고, 기침 소리가 날 때마다 따뜻한 차를 대령하여 증상이 잦아들게 해 주었다. 말 그대로 그에게 작년 한 해는 육아가 아닌, '아내 돌봄' 휴직이었다.





아이의 학교 생활, 숙제, 준비물 등을 일하는 내가 손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완벽하게 '육아'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항상 불만이었다. 그런데, CT 재촬영의 결과지를 손에 받아 들고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그동안 무엇을 보고 달려왔는 지를. 그동안 그는 나에게 사랑의 헌신과 수고를 쏟아부었다. 이제야 그것을 깨달은 불평투성이 아내, 그게 바로 나였다.



어두운 세계에서 빛으로 넘어온 이유가 대체 무얼까. 헤매던 질문의 답이 바로 더듬어진다. 첫째는 하나님의 일하심이요, 둘째는 남편의 애씀이었다. 나는 그 둘의 사랑을 부지불식간에 그저 공짜로, 덥석 덥석 받아먹은 은혜받은 자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말했다. 관점을 바꾸면 어떻게 보느냐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도 바뀐다고. 제대로 된 관점에서 보면 모든 폭풍과 그 안에 든 모든 빗방울이 무지개라고. 때론, 끈질기게 잡고있는 자신의 고집스러운 시야를 바꿀 필요가 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무지개 너머에 약속된 세계가 손에 잡힌다. 그렇게 헤매던 나를 남편은 다르게 봐주었다. 이제, 그와 같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온갖 화살을 맞고도 보아야만 하는 것에 흔들림 없었던 남편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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