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 서곡
대학교 3학년, 출구 없는 인생의 터널 속에 갇혀있던 나에게 숨통을 틔워 줄 탈출구가 절실했다. 잠시 일상을 접고 모든 것에서 벗어날 구실을 찾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그저 한국을 뜨고 싶었던 막연한 소망을 현실로 끌어온 것은 <베트남 청년 봉사단> 모집 공고였다. 난생처음 한국을 벗어나 어떤 국가에서 해외 경험을 해볼까?라는 진지한 고민 따윈 필요 없었다. 코 앞에 툭 떨어진 기회를 냅다 주워 담을 잽싼 기동력만 충천했을 뿐.
그해 여름은 흥건하게 물기 먹은 내면처럼 극도로 축축했다. 텁텁한 더위 속 호찌민의 첫 공기가 콧 속으로 밀려들던 순간을 여전히 감각한다. 고대하던 첫 해외 경험을 어찌 잊으랴. 폐를 비집고 들어오는 끈적한 습을 거담 토해 내듯 신음과 함께 뱉어냈다. 매일 같이 쏟아붓던 스콜과 함께 힘겹게 열기를 밀어낸 3주였다. 베트남은, 썩 뽀송하지 않은 기억 한 조각으로 가슴 저편에 묻혀버렸다. 20여 년이 훌쩍 지나서 뽀얀 먼지 속에 뒹굴던 그 시절을 다시 소환해 낼 줄이야.
어린아이와의 동반 여행으로 단연코 휴양지가 일 순위다.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등은 옵션국으로 바로 떠올랐지만 베트남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언제나 열외였다. 마음을 살짝 열게 된 것은 지난해에 이르러서다. 교회 파송 베트남 선교사님의 외로운 타지 생활을 들은 덕분이랄까.
"혼자 먼 타향에서 사역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극도의 외로움입니다. 가끔 연락도 해주시고 기도해 주세요."
호찌민에서 가까운 그의 사역 현장을 방문하여 위로해 드리고 아들에게 해외 선교 역사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생겨났다. 베트남에 대한 아스라진 기억들 중 따스함을 더듬으며 기억의 편린들을 끼워 맞추기 시작했다. 과거 해외 봉사단 팀원들과 깍두기도 담가 먹었지. 현지 베트남 학생들의 오토바이 뒷 좌석에 올라타고 거리를 누비던 이색적인 추억도 쌓았구나. 한국으로 돌아온 후 한동안 그들과 메일 혹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나랑 단짝처럼 붙어 다녔던 건축학과 언니는 잘 있을까? 맞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년시절이었다.
선교사님이 비자 문제로 갑작스레 한국행을 결정하시는 바람에 본래의 여행 취지에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설렘에 시동을 건다. 지난해 발리는 아이와 단둘이었지만 이번 베트남은 가족 완전체라는 사실만으로 출발 전, 안정감 풀장전이다.
우선, 개인적으로 남편/아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통해 말라 바삭해진 이전 기억들을 촉촉하게 매만지며, 주름 없이, 매끄럽게 다림질해 주고 싶다. 초두효과(primacy effect:처음 입력된 정보가 나중에 습득하는 정보보다 더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의 부정 이미지를 덮을 만큼. 모든 경험은 나를 통과한 소중함을 지니기에. 무수한 여행들 가운데 하나가 될 우리의 여정기가 누군가에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얹는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 좋든 싫든 제대로 씹어낸 여행 시간을 풀어보련다. 기다려, 헬로 나의 베트남!
XIN CHAO, VIETNAM!(안녕, 베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