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품아(초등 품은 아이) 동행일기

대안이 아닌, 최선

by 위혜정

대안학교, 난 대안학교라는 말이 그리 편치 않다. 같은 학교인데 구분을 짓는 그 경계가 때론 아프다. 내 아이가 대안학교에 다니고부터는 더 그렇다. 부모로서 자녀를 위한 교육적 결정은 모두 최선이다. 그런데 교육 기관 앞에 대안라는 수식어가 붙는 순간 뭔가 다른 이질감이 생겨난다. 주류를 이루는 비교군을 염두며 '굳이 왜?'라는 곱지 않은 시선과 함께 유별난 차선이라 긴다. 각자의 교육적 가치관이 반영된 최선의 선택인데도 다름을 의아해하는 사람들에게 설명 내지는 해명을 해야 한다. 일반 공립학교를 보냈더라면 백 프로 부재한 과정이다.

"넌 어떤 어린이집 다녀?"

"나? 무슨 어린이집이냐고? 에이, 오빠 나 어린 집 안 다녀. 유치원 다니지!"

"그럼 어느 유치원 다니는데?"

"OO 유치원. 오빠는 어디 다녔어?"

"난 OO 어린이집. 근데 이름만 어린이집이야. 여기 유치원이랑 똑같은 거야."


6세(유아 마지막 해), 7세(초등 첫해) 아이 둘의 대화가 사뭇 진지한데 나에겐 웃다. 자기가 이래 봬도 장성한 유아인데 아직 어린이집에 머물러 있는 줄 아느냐 항변하는 쪼꼬미와 어린이집 출신으로 동생이 가진 뿌리 깊은 오개념을 제대로 잡아주려는 쪼꼬미들 둘이서 10년도 채우지 않은 인생 경험에 삐대어 서로를 주장하 있다. 결국은 모두 비슷한 또래들이 다니는 유아 교육 기관인 것을 뭘 그렇게 명칭에 대해 선을 긋는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대화이다.




아이를 낳고 나면 학부모라는 당연직의 고민은 늘면 늘었지 절대 줄지는 않는다.


"어머니, 맞벌이세요? 그럼 영어 유치원 보내는 건 선택이 아니라 필수죠!"

"저희 유치원은 하브루타 교육을 지향합니다. 4차 산업 혁명에 필수적인 창의력, 사고력의 기본을 갈고닦습니다."

"유아기에 인성을 잘 잡아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도와 성품 교육, 가정과 함께 만드는 교육이 저희 유치원의 지향점입니다."

"숲체험 필두로 자연친화적인 먹거리와 경험을 다양하게 할 수 있도록 신경 씁니다."


저마다의 강점으로 학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기관 설명회에서 직장맘이라는 필터로 걸러내면 선택의 폭이 확 줄어든다. 우선, 돌봄 없이 여름 방학, 겨울 방학 각각 2주의 셧다운을 땜빵할 여력이 없다. 나의 당연한 선택지는 어린이집이었다. 대안이 아닌, 최선이었다. 유아 시절은 교육이란 이름 하에 조그마한 아이의 뇌에 꾸역꾸역 무엇인가를 집어넣는 것보다 애정이라는 돌봄의 정서를 넘치게 채워주고, 학교 입학 전까지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 먼저는 생각이 백분 반영되었다.


워킹맘으로 선택한 어린이집은 유치원 못지않은 규모,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집에서 도보거리라는 장점과 언제든 돌봄이 가능한 비상 완충제까지 갖추어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었다. 여기에 끼고 앉아 뗄 계획을 하지 않았던 한글까지 다 떼주고 알림장 쓰기, 받아쓰기 연습까지 이만하면 가성비 갑이다. 완벽한 대만족은 아니지만, 지나고 보니 좋았다. 차선이 아닌, 최선의 선택이라 그랬다.


초등학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인생을 살아가며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닿은 결론은 신앙, 인품, 실력 세 가지였다. 우선순위는 '신앙과 인품'이었다. 생의 가치관과 생을 살아낼 힘이 되는 이 두 가지는 평생을 살아가며 탄탄하게 다져야 할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다. 실력과 기술이야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갈고 닦을 수 있다. 하지만 신앙과 인품은 한 아이의 저변에 넓고 두껍게 깔리는 토양이다. 토대가 약하면 탄탄한 힘을 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 된다. 흔들려도 꺾이지 않는 뿌리를 깊게 심어 주고 싶다는 엄마의 바람 욕심이 들었다. 주일 학교가 축소되어 가는 작은 교회에 출석하면서 나와 남편 둘만의 힘으로 이 중요한 토양을 두툼하게 깔아줄 수 있으리라는 자만을 일찌감치 버렸다. 교회 아동부는 초1, 2, 3 학년 각각 단 한 명씩 출석하다 보니 믿음의 친구들 조차 만나기 힘든 척박한 땅이었다. 형제자매도 만들어 주지 못한 미안함에 다니엘과 세 친구와 같은 믿음의 친구들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인간적인 생각이 간절했다.


그렇게 난, 신앙에 대한 고집과 인간적인 생각을 담아 내 아이를 위한 최선의 결정으로 기독교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물론, 처음부터 평탄한 길은 아니었다. 남편조차 탐탁지 않아 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놀람, 걱정, 곱지 않음이었다. 뭐, 이런 반응들은 늦깎이 인생을 통과하다 보니 이미 익숙해졌다.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을 가다 보면 따로 떨어져 있는 외딴 감정을 오롯이 견뎌야 한다. 그런데 이번엔 살짝 다르다. 내 인생이 아니라 아들의 인생이었다. 긴장과 불안의 정서가 교차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 학기를 지나고 보니 좋았다. 역시 최선의 선택이었기에 그랬다.


"고민이 참 많으셨겠어요!"


다른 어떤 말보다 큰 힘이 되는 한 마디였다. 내가 하지 않은 남의 경험에 대해 판단을 유보하고, 그저 존중하는 말이었기에 나의 선택에 대한 응원으로 들렸다. 학교마다 교육의 중점만 다를 뿐,대한민국에서 아동기를 거치고 있는 아이와 학부모의 마음은 별차이가 없을 듯 하다-아이가 이 세상이라는 터에 건강한 심신으로 잘 설 수 있는 것. 잘 서있다는 개념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여러가지 중 하나의 길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편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름의 옳음'라는 정서가 일반화되면 좋겠다.


이질감으로 거리를 두면서도 무엇이 다른지 궁금한 분들이 있다면 기독교 대안학교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단, 다른 교육 기관은 경험해 보지 않아 비교할 수 없다. 물론, 어떤 선택이든 부모의 최선이기에 비교할 마음도 없다. 모든 부모의 선택을 존중하고 또 응원한다. 나 역시 그런 응원을 받기를 바란다. 인생에 단 하나의 정답은 없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