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게

학교의 따뜻한 원칙

by 위혜정
한 아이도 소외되지 않는다.


학교의 따뜻한 원칙이다. 이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 <공동체의 약속>이라는 제목으로 학기 초 이사장님이 전체 권고문을 올리셨다. 눈에 띄는 항목은 '신학기 사적인 모임 자제'였다. 공동체에 새롭게 유입된 아이들이 서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따로 사적인 만남을 통해 쌓는 유대관계를 경계해 달라는 당부였다.


신학기를 앞두고 엄마들은 분주해진다.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엄마들끼리의 돈독함이 아이들 간의 끈끈함으로 이어진다는 불문율이다. 전업맘들은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하도록 관계를 맺어주려는 움직임에, 워킹맘들은 그만큼의 신경을 쓸 수 없는 여력 부재에 마음 쓰인다. 1학년부터 맺어진 관계가 고학년까지 간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어왔다. 워킹맘으로 마음 졸이는 말이다. 성격상 인위적인 모임 속에서 살가운 관계를 맺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학교라는 새로운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아이를 위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그러던 중 이사장님의 권고문은 마음의 소모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반가운 글이었다. 아이들의 적응과 성장을 돕기 위한 학교차원의 배려, 말뿐이 아닌 실제적인 행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리더십이 굳건하게 근간을 잡아준 학교 문화는 학부모 사이에서도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어떤 모임을 잡더라도 전체 공개를 하여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둔다. 매주 있는 학부모 기도 모임 후 간단한 오찬 모임이나 아이와 함께 체험활동을 할 때도 끼리끼리 삼삼오오가 아니다 보니 반톡은 언제나 바쁘다. 각자의 스케줄이 맞으면 함께하고 그렇지 않으면 빠지는, 적절히 공유되는 사적 모임은 전체에 대한 배려로 자리 잡아간다.

교사들의 전문적 학습 공동체 모임을 위해 한 학기에 2번 아이들이 일찍 하교를 하는 날이 있다. 전체 반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반모지기(반대표엄마)가 기획하는데 그때도 마찬가지다. 모든 엄마가 함께하지 못하더라도 여건이 되는 엄마들이 자원하여 반 전체 아이들을 함께 책임지고 차량지원과 인솔까지 하며, 엄마의 상황 때문에 한 명이라도 소외되는 일 없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준다.


"전 아이를 학교 보내는 것에 어떤 불안함도 없었어요. 어머님들이 너무 잘 챙겨주셔서요."


학기 초, 한 직장 엄마 고백이다.


학교 운동회에서도 비슷한 결의 가슴 찡함을 느꼈다. 청팀-홍팀, 두 팀으로 나누어진 아이들은 매 경기마다 응원 삼매경이다. 릴레이 계주에서 한 명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꽃을 피운다. 단 몇 명의 빠른 선수들을 선발하여 진행되는 계주가 아니다. 몸이 불편한 아이들도 몸이 편안한 아이의 손을 잡고 자신에게 주어진 코스를 자신의 속도에 맞추어 뛴다. 전교생이 모두 동일한 코스를 돈다. 저학년은 저학년 대로, 고학년은 고학년 대로 자기들만의 보폭으로. 전교생이 참여하는 계주는 결과를 알 수 없이 엎치락 뒷치락을 반복한다. 운동장을 빙 둘러싼 아빠 엄마들은 자기 아이들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의 전력질주를 위해 환호성을 아끼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환호하며 내 아이만이 아닌 남의 아이도 품에 안게 되는 마법을 느꼈다.


모든 아이들이 한 번씩은 널찍한 운동장에서 단독으로 뛰며 자기 무대의 주인공이 된다. 속도가 빨라서, 잘 뛰어서가 아니다. 그저 인생의 한 트랙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뛰어가는 그 모습 하나면 충분하다. 앞으로 겪게 될 수많은 좌절을 이겨낼 수 있는 응원의 힘이 축적되는 현장이다. 미리부터 경쟁의 불꽃 튀는 세상으로 등 떠미는 것이 아니라, 협력의 가치를 다독이는 운동회는 감동이었다.


공동체의 약속이 공동체의 문화가 되어가는 과정. 리더십과 구성원 모두가 신뢰를 기반으로 빌드업해 가는 이 문화가 난 참 좋다. 너는 나의 경쟁자가 아니라 너는 나와 함께 가는 귀한 존재라는 인식, 존중의 미덕이 상식이 되는 가치가 잘 뿌리내리면 좋겠다. 아이가 커서 마주하게 될 치열한 세상에서 마음의 중심을 지켜내고 굳건하게 설 수 있는 가치를 잘 다져가길 바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초품아(초등 품은 아이) 동행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