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정화
2024년, 어쩌다 고3 담임이 되었다.
2025년, 어쩌다 학교 폭력 책임 교사가 되었다.
업무 분장에서부터 할 말이 너무 많지만 말을 아낄 수밖에 없는 자리다. 언젠가는 풀어놓을 수나 있을지, 그러려면 소설을 써야 될 듯싶다.
올해 아들의 등하교 라이딩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비담임을 희망했는데, 고3 담임보다 훨씬 높은 업무의 강도를 나날이 갱신하고 있다. 일상의 고달픔에 그냥 고3 담임이 나았을 뻔했다는 후회만 연거푸 들이킨다.
브런치 글 발행 횟수가 가파르게 하락한 것만으로도 올해가 얼마나 힘든지 가늠이 된다. 정말, 힘들다. 글 쓸 에너지 고갈이 아니라 일과를 지탱할 힘조차 겨우 끌어 쓰는 지경이다. 방학을 앞두고도 학폭은 빵빵 터지고 여지없이 민원이 들끓는다. 나는 가르치는 사람인데, 행정처리반인지 민원 창구인지 정체성이 혼미해진다. 급우울감이 몰려오기도 한다.
보통 학폭은 피해 관련 접수자가 극단까지 끌고 갈 생각으로 신고 접수를 한다.
'학폭 신고 접수합니다. 화해할 생각 없고 교육청까지 가서 처벌받기를 원합니다.'
대부분 피해 관련 학생과 학부모의 의지는 완고하다. 따라서 가해 관련 학생에 대해 반성의 기회를 주거나 교육적인 선도를 하거나 양측의 화해 및 조정을 위한 학교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학폭 접수가 되는 순간 촌각을 다투는 숨 가쁜 사안 처리가 시작된다. 수업도 해야 하고, 수업 외 시간을 쪼개어 매뉴얼대로 끝없는 행정처리를 해야 하고, 전담기구 위원들 간의 스케줄을 조정하고 맞추어 심의를 해야 한다. 가피해 관련 학부모와 학생, 사안 조사관과 교육청 등 여기저기 열려있는 의사소통 채널도 다양하다. 분노가 차오른 학부모들은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감정을 마구 쏟아놓고, 성에 안 차면 교감-교장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은 예사다.
생기부 기재, 평가 계획 등 학기말 업무가 산적해 있는데 시작도 못하고 있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학폭 업무로 허우적 대고 있는데 오전에 문자 한 통이 날아들었다.
"선생님, 점심 바로 드시지 마세요~ 방문예정입니다!"
졸업생이다. 스승의 날에도 찾아준 고마운 녀석이 방학했다고 또 얼굴을 비추러 온단다. 순간, 울컥했다.
"얼른 와. 선생님이 너무 힘들어서 안구 정화, 마음 정화가 필요하다."
땀을 뻘뻘 흘린 채, 박카스 한통을 옆구리에 끼고 교무실 앞에 서있다. 혼자가 아니라 반가운 얼굴 한 명과 함께. 졸업생 둘과 점심을 먹으며 풋풋한 대학 생활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일부러 모든 것을 잊고, 오전 내내 힘겨웠던 마음의 짐을 풀어 던지는 시간을 가졌다. 어제 흘렸던 눈물을 씻겨주듯 모처럼 주어진 선물이다. 그냥, 가르치고 상담하는 시간들이 그립다. 고맙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