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으로
'팔이 네 개인 나라는?'하고 난센스 퀴즈로만 만나던 나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국기가 사각형이 아닌 나라.
세계의 지붕 히 말라야 산맥에 맞닿아 있어 트래킹족과 그들을 이끌어 가는 셀파(sherpa)의 나라.
이 정도가 네팔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세계 10대 최고봉 중 8개를 보유한 산악국가인 네팔을 체험하고 난 후, 트래킹, 래프팅 등의 관광 코스는 오직 해외 관광객들만의 향유물이라는 것을 추가로 알게 되었다. 정작 가난으로 인해 현지인들 누구도 감히 자국이 가진 천혜의 자연을 누리지 못한다. 나라가 가난해서 태어나면서부터 가난과 함께 살아가는 하는 사람들, 하지만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산골 마을 아이들의 똘망똥망한 눈망울과 네팔 현지에서의 만남들을 풀어내 본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한다. 청년 시절, 나만을 위한 여행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한 '특별히 준비된 여행'을 꿈꾸었다. 외지인들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첩첩산중 마을들을 방문하여 현지인들의 삶을 직접 눈에 담고, 한국에서 가져간 후원 물품들을 전달하며, 땅을 밟으며 그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선교사님의 네팔 산간지역 지도 업데이트에 도움을 드리는 것이 <네팔 미션 트립>에 참여하게 된 이유였다.
마음을 모은 5명의 동지들과 함께 매주 2번씩 준비 만남을 가졌다. 네팔과 네팔 사람들, 네팔어에 대해서 공부하고, 후원품을 모으고 마술, 풍선 아트, 그리고 간단한 공연을 연습했다. 산간지방 여행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체력을 다지기 위해 다각도로 열심을 냈다. 청계산 등반, 자전거 여행 등 나름대로 체력을 기르고 팀워크를 다지는 데 공을 들였다. 3개월 간의 짧지만 긴 준비기간을 거쳐 타들어갈 것 같은 8월의 여름, 오지 여행 대장정의 막이 올랐다.
'미지의 세계 탐험'이라는 도전 정신이 발동해서인지 무엇 하나 정해짐 없는 여행길이 떨렸지만 신났다. 선교사님께서 땅밟기 코스를 정하셨다. 지도상에 타나난 도시 '포카라'와 '다딩베시'를 잇는 산간 지역 마을을 훑는 것이다. 어디서 묵게 될지, 무엇을 먹게 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 없이 여행길에 올랐다.
여벌 옷 한 벌, 속옷, 판초, 침낭, 세면도구, 비상식량, 의약품, 후원품, 물통 등 최소한으로 짐을 줄였는데도 배낭의 무게가 7~8kg이다. 한 마을에서 다음 마을까지 가기 위해 1~2시간을 이고 지고 걸어야 하는 짐이다. 선교사님을 필두로 청년 5명은 등산화와 폴대에 의지해서 헉헉거리며 가다 쉬다를 반복한다. 마을 어귀에서 현지인 꼬마 둘을 만났다. 신기한 듯 외부인을 바라보던 그 녀석들은 이내 경사진 비탈길을 샌들 하나 달랑 신고 어깨동무를 하며 쌩하니 달려간다. 굽이굽이 산길을 넘어 다시며 어렸을 적부터 다져진 그들의 체력은 세계 최강이다.
한 마을을거쳐 다음 마을이 나올 때까지 끝없이 펼쳐지는 산길을 걸으며 처음에는 광활한 자연에 경탄하며 재잘재잘 댔다. 하지만 곧 조용히 서로의 발꿈치만 바라보며 내가 걷는 건지 발이 멈추지 못하는 것인지 끝없는 헷갈림 속에 쉬지 않은 산행이 감행된다. 한참을 걷다 계곡을 만나면 뒷생각 하지 않고 계곡물에 빠져 더위를 식힌다. 물도 정수한다. 땀과 물에 젖은 옷을 배낭 위에 턱 걸쳐 말린다. 그저 자연이 하라는 대로 몸을 맡긴 채 끝없이 펼쳐지는 자연 속으로 다시 돌아간다.
하루 종일 걷다가 퉁퉁 부은 다리는 잠자리에 들기 전, 서로 번갈아 가며 엎드려 있는 사람 위에 올라간다. 전심으로 자신의 무게를 담아 꾹 눌러주며 서로의 근육을 풀어준다. 참 멀고도 험한 길, 등산을 싫어하는 내가 3일 동안 무려 8개의 산봉우리를 오르고 내렸다. 믿을 수 없다. 그것도 한국의 산이 아닌 고산 지대 네팔의 산을. 평생 다닐 산은 다 다닌 것 같다.
깨달은 것이 있다면, 혼자서는 절대 못해내는 일을 함께할 때 가능하다는 것. 옆에 누군가 함께 걷고 있기에 나도 걸었다. 싫어도 그 힘에 기대어 걷게 된다. 걸어진다. 소중한 경험이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그 맛을 조금 느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산골 마을, 해가 뜨면 하루가 시작되고 해가 지면 끝이 난다. 원시 부족들의 삶이다. 그 삶에 잠깐 편입되었던 나 역지 자연스레 자연인이 되었다. 네팔은 그렇게 자연으로의 부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