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들을 소환하는 마력

든든하게 함꼐하는 교육

by 위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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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의 교직 생활 동안 학부모 상담 주간에 의례히 만나게 되는 부모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였다. 어머니 대신 아버지가 학교로 직접 찾아와 얼굴을 마주하며 상담을 했던 경험은 단 한번, 아들에 대한 특심을 가진 부성(父性) 덕분이었다. '왜 엄마가 아닌 아빠가 학교에 오시는 걸까?' 의아해하며 엄마의 등장을 당연시 여기는 선입견으로 긴장감이 더해졌다.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 모두의 관심 당연한 것인데 남편이 아닌 아내 주도형 한국 교육 현실을 은연중에 디폴트값(기본값)으로 깔고 있었던 건 아닐까.




대안학교는 일반 학교에 비해 학부모의 학교 프로그램 참여도와 헌신도가 높은 듯하다. 자연스레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의 학교 교육 활동 기여의 폭이 넓고, 또 깊다. 운동회에서 느낄 수 있었다. 교사의 입장에서 '우와, 이런 것도 학부모님들이 담당해 주신다니!'하고다. 고등학교의 경우, 체육대회는 학교의 체육 교사 전체가 동원될 정도로 업무 강도가 높은 연례행사이다. 그 덩어리를 뚝 떼어내어 학부모회, 그것도 아버지들이 손발 벗고 나서서 짊어져 준다니 뒤늦게 알고 감탄했다. 아버지들의 전후 행사 준비와 정리, 체육대회 진행까지 모든 과정을 현장에서 직접 겪으면서 교사 입장에서 너무도 감사한 업무 경감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영적 교육이라는 사명감이 더해진 교사들에게 숨통을 틔워주고, 학생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충분한 힘 실어 주기 위한 학부모들의 배려 품앗이 아닐까 한다.


아버지들끼리의 교제와 친밀감은 손에 꼽는 진귀함이기도 하다. 학기 초, 각 반별로 어머니회, 아버지회의 개념으로 두 개의 반톡이 열린다. 반톡에서는 반모지기(반 어머니 대표)와 반부지기(반 아버지 대표)를 중심으로 기도제목, 각종 학교 행사, 학부모 교육 알림 및 반별 모임에 대한 공지와 논의가 이루어진다. 아버지들의 카톡 단체방, 처음엔 뭔가 어색했다. 어머니들은 보통, "OO 엄마예요."로 시작하지만 아버지들은 "OOO입니다."로 본인 이름 석자를 분명히 드러내며 말문을 튼다. 개인적, 사회적 자아가 강하게 드러나는 그들의 대화 문화를 곁눈질하며 부성과 모성의 차이가 신기해서 웃음이 났다.


알알이 흩어져있던 관계의 어색함이 시간과 함께 벗겨지면서 급기야 아버지 주도형 행사라는 경이로운 이벤트로 이어졌다. 아내들과 의논 한 번 없이 반전체 가족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바비큐 파티를 기획하고 준비하다니. 학교 바베큐장에서 이루어진 토요 깜짝 파티는 아이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행복했던 추억이었다.

행사를 위해 아버지들끼리 자발적으로 카페에서 모여 진지하게 기획회의까지 하는 사진을 보며 어머니 반톡에서 난리 났다. 50명이 훌쩍 넘는 인원의 대규모 이벤트다 보니 장보기, 놀이 계획, 장비 및 준비물 점검, 역할 분담까지 꼼꼼하게 따져야 했다. 각자의 일터에서 마침표를 찍 후 다시 투입되어 야근에 투잡을 뛰는 듯한 아버지들의 진중함 거침없는 탄성 터져 나왔다. 따라와 주기만 해도 감사인데 예상치 못했던, 그리고 기대 이상으로 아버지들이 보여준 적극성에 기특함 내지는 기대감이 얹어졌다. 함께 오는 동생들 캐어까지 손발이 척척 맞는 끈끈한 팀워크는 부성의 존재감을 강하게 증명했다.

성공적인 행사를 마무리한 후, 아버지들은 저녁 식사 모임, 팥빙수 모임 등 소소한 모임들을 이어나간다. 술 한잔 기울이지 않아도, 커피 한 잔만으로 대화의 꽃을 피울 수 있는 남자들의 시간은 친구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대다수 학교 생활의 전형을 뒤집는 신선한 반전이다.

입학 전에는 아버지들 간에 관계가 무르익어 가는 공동체 문화 알지 못했다. 경험해 보니, 학교 선택의 만족도를 높여주는 주요인 중의 하나가 바로 아버지의 교육 참여라고 할 수 있다. 규모감 있고 치밀한 프로젝트를 담당해 온 그들의 다양한 사회 경험들은 어머니들과 또 다른 색깔의 아웃풋을 보여준다. 여기에 아버지들의 연대가 단단히 받쳐주는 안정감은 꼬집어 설명할 수 없는 든든함이 있다.




교육은 가정-학교-사회가 긴밀하게, 유기적으로 연합할 때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복합 예술이다. 특히 사회로 나가기 전 단계를 지나고 있는 학생들에게 가정과 학교는 중요한 교육 연합체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배울 수 없는 작은 사회, 공동체의 질서를 학교에서 경험하고, 학교에서 이끄는 교육 원칙들의 틈새를 가정에서 잘 메꿔 주어야 꽉 찬 열매를 맺어갈 수 있다. 학교와 가정이 서로 삐그덕 거리지 않고 발맞춰 나갈 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의 마음밭에 씨를 뿌리고 물과 양분을 한껏 부어 주는 가꿈의 동역이 조화롭게 합주된다.


이때 가정은 부와 모를 모두 포함한다. 아버지의 역할이 살아있는 유대인의 교육에서처럼 어머니에만 국한되지 않은 가정교육은 어쩌면 부모 됨의 책무이자 소중한 특권이다. 대안학교라서가 아니라, 일반학교에서도 의식을 가지고 육적 실천을 하는 부모들이 많아졌다. 함께 낳았으니 함께 교육하는 것, 동역의 진정한 의미이자 지혜이다. 이 명제가 특별함이 아닌 당연함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뿌리 깊은 어머니 주도형 교육 문화 속에서 아버지들이 소환될 때 경험하게 된 풍성함과 든든함은 자녀 교육이라는 망망대해 속에서 '함께'라는 동행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건강한 주인 의식이자 나란히 걷는 따뜻한 책임감이다. 경험하지 않았으면 모르고 지나갈 뻔 했다. 아빠들을 잠재우지 않고 흔들어 깨우는 마력, 힘차게 교육적 참여로 이끄는 학교 문화에 깊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