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사람

마지막 수업

by 위혜정

2020년, 현재 학교에 발령을 받고 벌써 다른 학교로 옮겨갈 시점이다. 2025년 마지막 해, 어떠한 사전 언질도 없이 업무 분장 당일, 학폭업무를 선고(?) 받았다. 아무런 저항 없이 주어진 일을 덥석 받은 바보였던 것 같다. 그래도 많은 것을 경험했고 많은 것을 얻었다.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시간들 속에서도 세운 한 가지 원칙이 있었다. 학폭 사안이 발생하더라도 수업은 빠뜨리지 말자. 긴급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늦은 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학생들의 학습권 보장을 지키려 애썼다. 다행히도 한 해 동안 딱 한 시간을 빼고 원칙을 지켜냈다.




드디어 길고 긴 여정의 끝, 마지막 수업이다. 미니 강의를 준비했다. 교사 대 학생이 아닌, 인생의 선배로서 사람 대 사람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듣고, 얼마나 많이 감흥할지는 알 수 없다. 그냥 단 한 사람만이라도 듣길 바라는 소망을 얹었다. 아이들이 졸업하는 모습까지 지켜볼 수는 없으니 이거라도 준비한다는 마음이랄까.





-선생님, 다른 학교로 가세요? 내일은 나오시나요?

-아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야.



막상 이 말을 내뱉고 나니 그간의 시간들이 아쉽다. '마지막'이 더해지니 못해준 날들에 미안함이 커진다.

더 많이 이름 불러주고, 더 많이 잘해줄걸. 있을 때 잘해야 하는데 없을 때 애틋해하는 인간의 아둔함이다. 모지리의 마음은 주섬주섬 정리할 수밖에. 쉬는 시간, 남학생들 한 무리가 교무실로 와서 고개를 빼꼼히 내민다.


-선생님...

-응? 나?


고개를 끄덕인다. 한 번도 교무실로 찾아온 적이 없는 녀석들이라 다른 선생님께 용무가 있는 줄 알았다. 찢어낸 연습장 같은 백지를 쭈뼛 들이민다. 밑도 끝도 없이 뜬금없는 요청을 한다.


-선생님, 사인해 주세요.


푸핫. 빵 터졌다. 다른 어떤 말 없이 사인만 해달라는 그 한 문장. 당혹스럽지만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순간이다. 단 한 마디이지만 모든 마음을 꾸역꾸역 담은. 말없는 남학생들의 낭만이다. 그래, 너희들에게는 많은 의미를 담은 말이지. 고맙고 또 고맙다.



-선생님, 오늘이 마지막이신 거 몰랐어요. 부랴부랴 편지 썼어요.

-선생님, 한 해 동안 너무 수고 많으셨고 감사했어요.

- 선생님, 연락처 알려주세요. 꼭 전화할게요.



교무실로 찾아온 고마운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안아주었다. 올 한 해 따뜻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담임이 아니어서 지긋해도 내 새끼로 챙길 학생들은 없었다. 학폭 업무로 마음이 무척이나 시렸다. 그래도 휑 한 가슴이 때마다 채워졌다. 수업에서 만난 아이들로부터 시절 따라 감사 편지와 감사 선물들을 받았다. 뜻밖의 꼬깃한 글과 선물들에 뭉클했다. 마음 따뜻한 아이들이 선물이 되어 따뜻하게 시간을 데워주었다.




많지 않아도 '단 한 사람'을 통해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 굳이 많은 수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한 명이면 족하다. 나 혼자 가는 길, 함께 갈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든든하고 위로가 된다. 수많은 사건사고와 다양한 유형의 아이들을 마주하며 힘들지만 교사로 살아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힘든 마음을 덮고 남을 만큼 따뜻했노라 말할 수 있는 것은 꼭 거창하게 많은 수의 사람 때문만은 아니다. 소박한 한 명 덕분일 수 있다. 그로 인해 교사의 삶을 살아간다. 난, 교사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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