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교사로 출근한 첫날, 가장 먼저 했던 생활지도는 핸드폰관련이었다.한 녀석이 고개를 푹 숙이고 교무실로 찾아왔다. 수업 중에 핸드폰을 사용하다 걸려서 뺏긴 모양이다. 그때의 교칙은 일과 중에 핸드폰을 수거하는 것이었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경우에만 담임교사의 허락 하에사용할 수 있었다. 백 프로 준수될 리 만무하다. 핸드폰을 하루 종일 옆에 두고 있어야 하는 아이들은 아침 조회시간에 '공기계 제출'로 눈 가리기를 하고 하루 종일 교사의 눈을 피해 핸드폰을 즐겼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 학생을 부르러 불쑥 교실로 들어갈 때면 핸드폰 수거율이 상당했다. 그로 인해 학생들과 실랑이하는 에너지가 크다 보니 선생님들 사이에서 "점심시간에 교실에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학생인권조례가 생겨나고 핸드폰 소지는 자율에 맡기는 요즘이다. 아침 조회를 하러 들어가면 피로로 인해 책상에 엎드려 있는 학생들,깨어있으면 머리를 숙인 채 핸드폰에 코 박고 있는 모습이 흔한 광경이다. 의미 없는 짤방이나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고 있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음소거로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을 하다 발각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핸드폰, 아니 스마트폰은 아이들에게 쥐어주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필요악이 됨을 교직 첫해부터 지금까지도 뼈저리게 느낀다.내 아이만은 절대 손바닥만 한 이 전자 기계의 수렁에 빠지지 않게 하리라 은연중 다짐했던 것 같다.남자아이였기에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하는 두 가지 행위에 경계의 각을 높였다.
한국 청소년의 일평균 핸드폰 사용시간은 주중 4.7시간, 주말 평균 6.7시간이라고 한다. 하루의 1/6~1/4을 온라인 세계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셈이다. 한국 아이들의 스마트폰에 노출되는 평균 연령은 2.2세이다. 길에서, 마트에서, 차 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떼쓰는 아이를 진정시키는 마법의 효과 때문에 아이의 손에 쥐어주기 시작한다.
하지난 아이러니하게도 스티브잡스, 빌게이츠, 마이클 주커버거 등은 자녀들을 지키기 위해 위해 14세까지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IT 업계 거물들은 자녀의 스마트폰 및 전자기기 사용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본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모양새가 좋지 않다. 자신들이 만든 세계에 타자의 자녀들을 중독시켜 돈주머니를 두둑이 채우고 있으면서도 그 해악을 알기에 자기 아이들은 안전하게 지켜내려는행태가 딱 NIMBY(Not In My Backyard) 현상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 스마트폰이라면 민감해졌다. 학교 입학 전까지 아이가 부모의 핸드폰에 손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유별나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영상은 물론이거니와 저장된 사진도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안 보여주니 찾지도 않았다. 자연스레 아이는 핸드폰을 보고 있는 유아들을 당연함이 아닌, 이상함으로 느끼며 "엄마, 쟤는 아기인데 핸드폰을 봐요." 하고 고자질을 해댔다. 교정행동으로 바라본 것이다.
학교를 결정하고 가장 매혹적이었던 교칙은 스마트폰 소지와 게임 금지, 전자 기기와 영상 시청 시간제한이었다. 우선, 개인적인 교육 방침과 기조를 같이한다는 점이마음에 들었다. 한 명이라도 스마트폰이 있다면, 혹은 누군가가 게임을 한다면, 아이들은 강하게 또래 문화로 유입되려 기를 쓴다. 반면,모두에게 차단된 세계라면 결국 안 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그것이 수용이든 체념이든 간에 부모와의 실랑이를 원천봉쇄해 준다.
발도르프 (슈타이너) 학교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IT 업계 임직원들 90% 이상이 보내고 있는 유명한 학교이다. 이 학교는 전교생이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으며 수업 역시 첨단 전자 기기들을 사용하지 않는 아날로그방식이다. 아이들의 "창의력"과 "집중력"을 기르고자 하는 취지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스마트한 기기들로부터 아이들을 차단하는 것만이 아니다. 아이를 "생각"하게 하고 "집중"하게 하는 창의력 교육이 병행되는 것이 핵심이다. 즉각적인 검색과 빠른 응답이 강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아이를 빼내어 사색의 시공으로 끌어오는 작업이 필요하다.
"엄마, 이건 뭐예요? 검색해 봐요!"
아이의 한마디에 뜨끔 했다. 스마트폰을 쥐어주지 않았을 뿐, 아이의 세상에 이미 뿌리 박힌 디지털 세상의 강력한 존재감에 다시 정신을 차린다.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