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것은 은혜

by 위혜정

"첫 번째 오토바이에 치였으면 아이를 다시는 보지 못했을 거예요."


CC TV를 돌려보던 형사의 안도 발언이다. 너무 끔찍해서 부모들은 그 장면을 보지도 못하게 막아섰다. 학교 앞,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평소 모범생이었던 여자 아이는 초록빛 신호가 바뀌는 것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넜고 70Km 속력으로 달려오던 오토바이에 치여 공중에 살짝 떴다가 바닥에 내팽개쳐졌다. 신호가 바뀌는 찰나에 더 높은 속도로 질주하던 오토바이 한 대가 쌩 하고 지나간 직후다. 꼬리를 물고 신호를 통과하려 했던 두 번째 오토바이 기사에겐 낭패였을지 모른다. 소리를 지르며 비키라고 했는데도 신호를 믿고 길을 건너던 아이는 길바닥에 패대기 쳐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 앞에 아픔보다 놀람과 당황이 먼저였을까. 부랴부랴 일어난 아이는 벗겨진 신발을 재빨리 발에 끼워 넣고 피아노 학원으로 내달렸다. 피해자의 안위를 살피지 않고 보낸 오토바이 기사는 명백한 뺑소니범이다.

피아노 선생님은 몰골이 말이 아닌 아이를 맞이하며 경악했다. 아이 손을 잡아끌고 교통사고 현장으로 달려 나갔다. 다행히 길 가던 행인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고 오토바이 운전사는 경찰서에 넘겨져 조사를 받게 되었다.


아이는 만신창이가 되었다. 머리를 땅에 부딪쳐 뇌에 이상이 없는지 CT 촬영을 해야 했고, 얼굴에 퍼런 멍이 들었고, 퉁퉁 부은 안구로 인해 눈 검사를 해야 했으며, 팔목 골절 후 성장판 검사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고 당일은 한 채로 구급차, 응급실로, 병원에서 줄 검사를 감행했다. 정신없이 하루가 흐른 후, 아이는 매일 울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시간을 통과하며 긴장이 풀렸는지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욕하며 소리를 지르던 오토바이 운전사의 무서운 잔상 때문에. 하필 그날 하교를 서두르며 횡단보도를 건넌 것이 자기 탓은 아닐까 하는 자책 때문에. 상황을 복기하자 끝없는 눈물이 멍울 진 마음속에 차올랐다.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은 더 미어졌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부모가 알려준 대로, 빨간 불이 아닌 초록불에 길을 건넌 것뿐이었는데. 사고의 흔적을 몸에 고스란히 안고 있는 아이가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찾고 있는 모습에 마음이 무너진다.


생계형 퀵서비스 오토바이 운전사는 아이에게, 그리고 아이의 부모에게 여러모로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결국 부모는 성숙하게 반응하기로 결단한다. 용. 서. 그를 용서하기까지 아빠와 엄마의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분노와 시시각각 싸워야 했지만, '소송까지 가봐야 달라지는 것이 무엇이냐'라는 마음을 붙들고 눈물로 멈춰 섰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엄마들이 훌쩍인다. 모두가 한결같이 사고에 내 아이를 끼워 넣으니 남 일이 아니다. 부모로서 느끼게 되는 동일한 갈등과 고뇌를 온몸으로, 온 마음으로 공감했다. 아이 엄마마지막으로 던진 한 마디 겸허한 울림 되었다.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 오토바이에 부딪친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머리로 알지만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좋은 상황에서의 감사가 아니라, 더 나쁜 상황이 아닌 것에 대한 감사다. 이 일을 통해 부모가 없는 곳에서 내 아이를 보호하실 하나님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닿는다. 그리고 지금껏 내 아이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심에 감사는 시간이었다.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시간이

내가 걸어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아침 해가 뜨고 저녁의 노을

봄의 꽃 향기와 가을의 열매

변하는 계절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한없는 은혜이다.


찬양의 가사다. 누려왔던 것, 지나왔던 시간, 걸어왔던 순간, 아침과 저녁의 현상, 계절과 시간의 변화, 어린아이의 시절을 통과하여 지금껏 숨 쉬는 것 등 인생의 구석구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을 훑고 나면 남는 것은 하나다. 노랫말 한 소절, 한 소절 속에 꾹꾹 눌려 담긴 정서, 바로 '감사'다.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기에 더욱 그렇다.


뭐니 뭐니 해도 감사의 최고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능동성을 띌 때가 아닐까 싶다. 손에 쥐어지는 무엇, 혹은 흡족한 상황에 대한 감사는 수혜 받는 것에 대한 대가성 반응, 즉 일대일 교환이다. 받으니까 주는, 그리 어렵지도 않 그리 능동적이지도 않은, 낮은 단계에서 의례히 내보내는 당위적 표현이랄까. 진정성이 희석 얕은 감사다.


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것은 고차원적인 의지이다. 감사력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듯 하지만 못할 것도 없다. 인생은 어차피 직선이 아니기에 생각과 계획을 벗어날 때가 많다. 곡선이 되었든, 무질서로 인해 형체를 정의할 수 없는 무엇이든 간에, 어느 한 점에서 다음 한 으로 감사의 발자국을 찍다 보면 결국 연속적인 인생 실루엣이 그려진다. '감사'가 판박이 스티커처럼 내 인생에 옮겨 붙는다.


판박이 스티커의 캐릭터를 피부 위 옮겨 붙이려면 투명 필름지를 문지르거나 그 위에 젖은 수건을 덮고 기다려야 한다. 손톱으로 힘주어 문지르거나 물에 적신 수건을 댄 채 잠자코 기다리면 신기하게도 필름막에 밀착되어 있던 형체와 빛깔이 또렷하게 피부로 가 붙는다.


내 삶에 특정 패턴과 색상을 찍어내고 싶다면, 인생이라는 필름막 위를 감사로 꾹꾹 문질러 내거나 감사의 수건을 덮은 채 잠시 기다려 보자. 삶으로 굴러 들어오는 다양한 모양과 색채, 긍정과 부정 요소들에 깊은 감사가 덧대어져 또렷한 실루엣이 내 생에 찍힐 것이다. 어정쩡한 감사로는 필름막을 깨끗이 떼어낼 수 없다. 이왕 하는 감사, 깊이 있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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