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리는 아이, 놀림받는 아이
상처받은 내 아이 다독이는 시간
일주일에 한 번, 가정 예배를 드린다. 학교의 숙제이기도 하지만 의무적으로라도 가족이 말씀 앞에 함께 있다 보면 아이의 마음을 들을 수 있다. 이번주 화두는 놀리는 친구들이다.
"OO랑 OO와 같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저 때문에 너무 비좁아졌다고 뭐라고 했어요."
또래들보다 유난히 키가 큰 아들은 단지 평균적이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여러모로 수난을 겪는다. 어른이 들어도 속상했을 말을 듣고 다니는 아들, 이번에도 마음에 상처를 입은 모양이다. 엄마의 마음에 뜨거움이 솟구쳤다. 한두 번이 아니다.
학기 초, 같은 반 친구 하나가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급식을 한번 더 먹는다는 이유로 '돼지'라고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마음에 생채기가 크게 남아 아직도 여물지 않고 있다. 입학 전에는 병원에 갈 때마다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곤 했는데 어느 순간 멈칫하더니 측정기 위에 올라서기를 거부한다. 약을 먹이려면 체중에 따라 적정량을 먹여야 하는데 도무지 몸무게를 재지 않으려는 아이와 실랑이를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억지로 잴 수도 없어서 아무리 어르고 달래봐도 소용이 없다. 병원 앞에서 하도 말을 안 들어서 눈꼬리를 치켜뜨고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가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낸다. 울음 터진 아이의 마음을 캐고 캐다 보니 깜짝 놀란 말한 응어리를 발견했다. 놀림당한 아픔, 그로 인한 자의식 때문이다. 진짜 '돼지'처럼 무거움이 수치로 증명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속상하고 속상했다. 놀림자는 잊어버렸을 독이 든 그 말 한마디 때문에 내 아이는 아직도 적정량의 약을 복용할 수 없다. 당장에 아들을 놀린 녀석을 잡아다가 볼기짝을 두드려 주고 싶다. 너라는 녀석이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날카로운 혀놀림에 친구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 걸 아느냐고 따지고 묻고 싶다. 그리고 다시는 남을 판단하는 말을 아무렇게 툭툭 내뱉지 않도록 따끔하게 훈계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내 자식도 아니고, 내 학생도 아니다. 엄마로서 내 자식은 그렇게 혹독하게 훈육을 하면서도 남의 아이는 그럴 수 없다.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엄마는 또 운다. 게다가 미숙한 내 아이 역시 무심코 한마디 잘못 던져 누군가가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숨이 절로 난다.
어떻게 지혜롭게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까? 앞으로 부지기수로 겪게 될 수 있는 동일한 문제에 대해 감정적인 공격 말고, 서로에게 이해되고 설득 가능한 방법을 찾는다. 육아 달인들이 말하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접근하는 방법이 있기나 할까? 부모로서 욱하는 심정을 잠잠히 내려놓고 곰곰이 생각한다. 풀이 죽은 아이의 기를 살려주고 싶은 마음도 담는다. 세 가지 결론을 아이와 나누었다.
아들아, 너의 속상함은 너에게 주신 경험이다. 그것이 아픔이라도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의 폭이 넓어지는 거야. 놀림당했을 때 네가 속상하다면 다른 친구들도 똑같아. 그러니 너는 다른 친구들을 절대 놀리면 안 되는 거야.
아들아, 놀리는 이유는 너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키가 커서 하는 말이 아니라, 남자는 뭐니 뭐니 해도 큰 키야! ^^ 네가 큰 게 부러워서 조그만 친구들이 더 그렇게 놀리는 것일 수도 있어. 시간이 좀 더 지나가봐. 나중에 알게 될 거야. 키와 덩치가 큰 것이 얼마나 큰 강점이 될 수 있는지를 확실히 알게 될 날이 올 거야.
아들아, 만일 놀리는 친구가 있다면 이렇게 얘기해 봐. 하나님을 믿는 너희들이 친구를 그렇게 비난하는 것은 죄야. 너희들은 그냥 장난이라고 하지만 상대가 속상하고 상처받으면 그건 잘못한 거지. 하나님은 그 죄를 다 기억하고 계셔. 그러니 앞으로 그러지 마.
아들은 잠자코 듣고 있다. 지금은 가슴으로 백 프로 공감할 수 없을지라도 머리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걸까. 그리고는 가정예배 기록지 밑에 성경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선생님, 친구들이 놀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놀리는 아이, 놀림받는 아이.
인간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나와 남을 비교하는 몹쓸 의식이 자연스레 싹트는 것 같다. 마음속의 소리를 걸러내지 않고 표출하는 아이들의 미성숙 때문에 내 아이가, 혹은 다른 아이가, 감정적으로 휘둘리거나 소중한 자아상이 깎여나가는 일이 없길 바란다. 그렇다고 부모가 24시간 따라다니며 모든 것을 막아주고 보호할 수도 없다. 어떠한 외부의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내 아이의 마음을 단단하게 다져가는 과정을 돕는 것이 부모로서 최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