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순간 그의 존재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신비함 속에서 무언가 실마리처럼 희미한 빛 한줄기가 보였다.
-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비행기 조종사인 나에게 어린 왕자는 지구 어디에서도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이었다. 동시에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하고 신비한 존재이기도 했다. 나의 그림을 모자가 아닌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으로 해석하는 남다른 상상력과 투시력을 가진 아이, 질문에 답은 하지 않고 질문 세례만을 퍼붓는 호기심 많은 독특한 아이였다. 어린 왕자는 비행기 조종사인 나의 세계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낯섦으로 다가왔다.
"아저씨도 하늘에서 왔구나! 어느 별에서 왔지?"
비행기에 관심을 보이는 어린 왕자에게 은근슬쩍 하늘을 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던 이 어른은 툭 내뱉은 아이의 한마디에서 다른 별에서 왔다는 신비로움의 실마리를 포착한다. 그 순간, 이해되지 않았던 것들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하!'의 순간이다. 어린 왕자의 세계에 접속되자 그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그와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익숙함에서 낯선 세계로 건너오게 될 때 주어지는 비밀의 법칙, '이해의 폭이 확장되고 뜨겁게 사랑하게 된다'이다. 환하게 다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한줄기의 빛을 따라갈 때 닫혔던 마음이 열린다. 이해는 곧 사랑이다.
키 크면 싱겁다는 말이 있다. 괜한 말이 아니다. 덩치 큰 아들이 겁이 많은 걸 보니 키와 담대함은 반비례인 듯하다. 생긴 것과 달리 유난히 겁이 많은 아들은 병원에 갈 때마다 민망한 상황을 연출한다. 꼬꼬마 시절, 골절 수술을 하면서 얻은 트라우마 때문인지. 하긴, 작은 체구에 전신 마취를 두 번이나 해야 했던 경험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을 법하다. 아니, 고통스러운 기억이었을 것이다. 선천적인 기질인지 후천적인 습득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때 이후로 뾰족한 주사 바늘 혹은 코로나/독감 검사 키트를 보면 기겁을 한다.
방과 후 1시간은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것이 아들의 일상이다. 교실에서 나온 후, 바로 친구들과 우르르 뛰어갈 줄 알았는데 잠시 담임 선생님과 대화하고 있는 엄마의 주변을 알짱알짱 거린다. 두 귀 쫑긋하게 세우고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엄마를 기다리며 뭔가를 만지작 거렸는지 이내 엄지 손가락에 가시가 박혀왔다. 선생님과 대화를 급히 마무리하고 아들을 끌고 바로 보건실로 직행했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멈칫하며 겁을 먹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진다.
"가시가 박혔네. 빼야지 뭐."
선생님의 진단과 함께 꺼내든 주사 바늘을 보며 아들은 뒷걸음질 쳤다. 안 빼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눈물부터 뚝뚝 흘린다. 적지 않게 겪어온 민망한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휴, 오늘도 험난한 시간이 시작되었구나. 처지 과정을 시뮬레이션해 줄 것을 요구하는 눈물범벅의 꼬마에게 선생님은 화 한번 내지 않고 하나하나 설명하며 응대해 주신다. 어르고 달래시다가 누구에게도 준 적이 없다며 망고 주스까지 냉장고에서 꺼내 주셨다.
"손은 선생님한테 주고 엄마 쪽을 봐. 그리고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기도해. 용기를 내보자."
"흑흑. 아파요? 아직 아직이요. 저 잠깐만 진정하고요."
엄마는 아들 대신 주기도문을 얼마나 외웠는지 모른다. 계속 울면서도 손을 선뜻 선생님께 주지도 못하고, 아프냐는 질문만 반복한다. 답은 하지 않고 질문만 해대는 어린 왕자와 다를 바 없다. 무한 반복되는 대화의 사이클 속에 난처함의 극단을 경험했다. 당장이라도 손을 잡아끌고 나오고 싶은 심정 반, 쥐구멍으로 숨고 싶은 심정 반이었다. 욱하고 올라오는 마음도 있었지만 아이를 달래고 어르는 선생님 앞에서 체면 떨어지게 버럭질을 할 수도 없었다.
"으악! 안 아프다. 안 아프다. 으악. 엉엉. 안 아프다. 엉엉"
체념처럼 터져 나온 비명과 눈물 젖은 자기 체면의 '안 아프다' 주술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눈 깜짝할 사이에 가시는 빠져나왔다. 단 몇 초를 위해 장장 40분간 실랑이를 하다니. 그간 오고 간 학생들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민망한 마음에 연신 굽신굽신 거리며 선생님께 죄송함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후다닥 나왔다. 오랜 대치 상황 속에서 선생님이 하셨던 한 말씀이 마음에 맴돌았다.
"이 친구 겁이 많죠? 제 아들 녀석도 그랬어요. 중학생 되니까 괜찮아지더라고요."
보건 선생님 역시 비슷한 아들을 둔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엄마인 난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선생님은 엄마의 마음으로 이해하고 계셨다. 겁 많은 아이의 밑도 끝도 없는 그 공포를. 채혈을 할 때도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나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아들의 자지러지는 반응들은 이해불가다. 40분이라는 눈물겨운 밀당의 실랑이 속에서 너무하다 싶은 마음뿐이었다. 일단 아들도 민망함과 고마움이 있었는지 보건 선생님께 드릴 편지를 쓴다.
"겁쟁이가 아니라 오감이 발달돼서 그래. 통각이 예민한 거지."
남편은 아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낸다. 처음엔 속으로 궁시렁댔다. 현장에 없었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지. 통각은 무슨, 역치를 넘어서도 한참 넘어선, 역치를 초월한 통각이라고? 포장 하나 거창하다. 머리로 따지려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의 빗장부터 열어야 이해가 될 텐데. 희미한 한 줄기의 빛을 바라봐주려는 의지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함께 <어린 왕자>를 필사하고 계신 선생님께서 좋은 문구를 공유해 주셨다. 연산 속에서 건져낸 인생의 교훈이다.
5-3=2 (오해도 세 번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2+2=4 (이해와 이해가 모이면 사랑이 된다)
마음이 뜨끈해진다. 이해의 반복, 모여야 사랑이 된다.
어린아이가 난생처음 수술을 위해 여러 개의 주사 바늘을 손등에 꽂아야 했던 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코로나 검사를 했는데도 수술직전 열이 올라 다시 검사를 하고 혼자 수술실로 들어가야 했던 공포가 얼마나 컸을까.
주사 바늘에 대한 트라우마와 예민한 통각이 만나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오롯이 아들의 공포를 이해하려고 곱씹어 보니 독감주사를 맞게 해야 하는 험난함이 눈앞에 기다리고 있지만 화내지 않고 손을 꽉 잡아주기로 결심한다. 너를 이해하고 이해하며 엄마가 더 사랑해 줄게. 이번주 독감만은 기필코 용기 내서 맞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