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도 다시 내 삶을 살아내야 한다
"이렇게 관리했는데 왜 나는?"
지난주, 나는 감기라는 작은 불청객과 일주일을 보냈다.
시작은 평범했다. 목 안쪽에서 살짝 긁히는 느낌, 그다음 날 아침의 묵직한 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사흘째 되던 날 몸이 완전히 백기를 들었다. 열이 올라오고,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그래, 이참에 좀 쉬자."
말로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속에서는 이상한 분노가 꿈틀거렸다.
나는 내 몸에 유별날 정도로 투자한다.
아침마다 챙기는 영양제가 일곱 개다. 주 3회 운동은 빠뜨린 적이 없고, 당분 섭취량까지 계산해서 먹는다. 정기건강검진은 물론이고, 작은 이상 신호에도 바로 병원을 찾는다. 사무실 사람들이 "너무 예민하다"고 할 정도니까.
그런데 왜 나는 쓰러진 걸까.
더 기가 막힌 건, 내 주변 사람들이었다. 건강검진 권유하면 "귀찮다"며 손사래 치는 동료. 라면을 주식으로 사는 후배. 운동화 신은 게 언제인지 기억 안 난다는 친구. 그런데 그들은 멀쩡했다. 콧방귀 한 번 안 뀌고 일상을 살아간다.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할까.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불현듯 깨달았다.
나는 건강관리를 '거래'로 여기고 있었다는 걸. "이만큼 투자하면 이만큼 건강해야 한다"는 공식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아프면 내 노력이 사기를 당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건강은 수학이 아니다.
관리한다고 병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병이 덜 오거나, 와도 덜 심하게 오게 만드는 거다. 어쩌면 이번 감기도 내가 평소 관리하지 않았다면 폐렴까지 갔을지 모른다.
건강관리는 확률을 높이는 일이었다. 보장이 아니라.
그리고 또 하나.
나는 남들의 겉모습만 보고 불공평하다고 투덜거렸지만, 사실 그들의 속은 몰랐다. 겉보기엔 멀쩡해도 누군가는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누군가는 나보다 훨씬 더 큰 질병을 숨기고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본 건 단지 그 순간의 스냅샷일 뿐이었다.
비교는 언제나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감기는 내 몸이 보낸 '강제 휴가 통지서'일 수도 있다.
나는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투자 포트폴리오 짜고, 강의 자료 만들고, 원고 쓰고, 클라이언트 미팅하고... 하루 24시간을 48시간처럼 쓰려고 애쓴다.
몸이 스스로 브레이크를 걸었을지도 모른다. "잠깐 멈춰"라는 신호를 감기라는 형태로 보낸 거다.
그렇게 생각하니 억울함보다는 고마움이 들었다. 큰 병 오기 전에 미리 경고해준 셈이니까.
병상에 누워 며칠을 보내면서 내가 쌓아온 건강관리가 한순간에 무너진 모래성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모래성은 무너져도, 모래성을 쌓는 기술과 재료는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매일 아침 물 한 잔 마시는 것, 계단 오를 때 숨 고르는 법, 스트레스받을 때 심호흡하는 것, 몸의 신호를 알아차리는 감각. 이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한 번 아픈다고 그 습관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제 나는 이렇게 말하려 한다.
"나는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는다. 오늘의 아픔도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것이다."
건강관리는 병을 완전히 막기 위한 보험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회복력을 키우는 투자다. 그 투자 덕분에 나는 앞으로도 더 오래, 더 깊이 내가 사랑하는 일들을 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내 몸을 지키는 건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라는 것. 그 선택이 반복되는 한, 나는 언제든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
감기가 다 나은 지금, 나는 다시 아침 영양제를 챙긴다.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내일의 나를 위해서.